법무부가 9일 허가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가석방 결정의 주요 근거는 경제 상황이었다. 이는 ‘재범 위험성과 개전의 정 등을 고려해 수형자의 빠른 사회 복귀를 돕는다’는 가석방 제도의 본래 취지와는 어긋난다. 이 부회장은 가석방이 되더라도 형 집행 종료 이후 5년간 취업이 제한되기 때문에 당장 경영에 복귀할 수도 없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경제 상황을 운운하며 재벌 총수를 가석방한 것은 특혜를 시인한 것이며 원칙을 잃은 ‘재벌 구하기’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지난 9일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국가적 경제 상황과 글로벌 경제 환경에 대한 고려 차원에서 이 부회장이 (가석방) 대상에 포함됐다”고 발표했다. 박 장관은 “사회의 감정을 고려했다”고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 부회장에 대한 가석방 허가 직후 구두논평을 통해 “삼성이 백신 확보와 반도체 문제 해결 등에 있어 더 적극적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이 앞으로 경제 회복에 앞장서야 한다는 기대감을 드러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식 입장을 밝히진 않았으나, 기업 총수들이 이 부회장에 대한 사면을 건의했던 지난 6월 “경제 상황이 이전과 다르게 전개되고 있고 기업에 대담한 역할이 요구된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며 우호적인 시각을 드러낸 바 있다.
법조계는 정부가 경제 상황을 꼽아 가석방을 허가한 건 요건에 맞지 않는다고 본다. 형법 72조에 따르면 가석방 요건은 ‘그 행상이 양호해 개전의 정이 뚜렷한 때’이다. 징역형을 복역 중인 수감자는 형기의 3분의 1이 지난 후부터 심사 대상이 될 수 있다. 법무부는 지난 4월 가석방 예비 심사 기준인 형 집행률 기준을 완화해 이 부회장을 위해 기준을 변경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았었다. 윤해성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사는 “경제적 상황, 국민 감정을 고려한 가석방은 특혜로 비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부회장이 석방되더라도 곧바로 경영 일선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문제도 있다. 특경가법상 5억원 이상의 횡령 등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이는 범죄 행위와 관련 있는 기업체에 취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재계는 이 부회장의 출소만으로도 경제 회복에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박 장관은 이날 이 부회장의 취업제한 해제에 대해 “고려한 바가 없다”면서 가석방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역대 정부에서는 재벌 총수에 대한 사면 및 가석방을 두고 원칙을 잃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비리나 부정에 휘말린 재벌 총수 등에 대한 대통령의 특별사면권을 제한하겠다며 비리 총수 무관용 원칙을 천명했지만,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이재현 CJ그룹 회장을 사면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이날 국회 의원총회에서 “법무부의 손을 빌렸지만, 이번 결정이 대통령의 결단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다”며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했다. 문 대통령 역시 야당 의원 시절인 2015년 1월 박 전 대통령이 최 회장에 대한 가석방을 허가할 당시 “재벌 대기업의 총수나 임원들은 이미 형량에서 많은 특혜를 받고 있는데 가석방 특혜까지 받는다면 그것은 경제정의에 반하는 일”이라며 비판한 바 있다.
구승은 기자 gugiz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