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특검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불구속 수사하려 했다”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 발언 보도로 여야를 막론한 비판 여론이 거세다. 정치권 곳곳에선 해당 발언이 사실과 다르다는 반박도 이어졌다.
지난 7일 동아일보는 윤 전 총장을 만난 의원들의 발언을 인용해 윤 전 총장이 “나를 비롯해 박영수 특별검사 등은 박 전 대통령을 비공개 조사한 뒤 불구속 기소하는 쪽으로 공감대를 쌓고 있었다. 그러나 소환 조사 일정 조율 과정에서 언론에 보도돼 조사가 무산됐고, 수사기간 연장도 불허돼 사건이 결국 검찰로 넘어가게 됐다”고 설명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윤 전 총장은 국정농단 사건 특검 수사팀장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윤 전 총장의 얘기를 들은 한 의원은 “윤 전 총장이 박 전 대통령 구속을 본인이 주도한 것으로 비치는 데 난색을 표하더라”고 했다. 윤 전 총장의 이런 발언에 대해 국민의힘 내에선 “박 전 대통령 장기 수감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특검이 아닌 검찰에 돌리며 친박성향이 강한 국민의힘 내부 지지세를 확장하려는 의도”라는 해석도 나왔다.
보도 후 정치권에선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윤석열, 자신이 국정농단 특검 수사팀장 시절 ‘박근혜 전 대통령을 불구속 수사하려 했지만, 사건이 검찰로 넘어가 구속되었다’라는 취지로 발언했다”며 “친박표 구걸을 위해 이제 자신이 수장이었던 검찰에 책임을 넘기는 비겁한 변명”이라고 비판했다.
조 전 장관은 이어 “2008년 윤석열이 파견돼 있었던 MB 특검팀, 일명 ‘꼬리곰탕 특검’은 MB 취임 직전 ‘MB는 다스 실소유주가 아니다’라며 무혐의 처분했다”며 “윤석열은 이 마음으로 국정농단 수사도 하려 했던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이명박과 박근혜에 대해서는 이렇게도 검찰권 자제를 추구하던 윤석열이 문재인에 대해서는 검찰권 오남용의 끝판왕을 시연했다”며 “그래놓고 자신은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대통령이 되겠다고 총장직을 던졌다”고 비판했다.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도 언론사 기자 시절 윤 전 총장과 술자리를 함께한 일화를 떠올리며 윤 전 총장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지난 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윤석열, 돌고래 아닌 박쥐’라는 제목의 장문의 글을 올렸다.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박쥐가 떠오른다”고 운을 뗀 김 의원은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을 당시인 지난 2016년 11월 윤 전 총장과 마포의 한 중국집에서 술자리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윤 전 총장이 자신에게 ‘박근혜 (정권) 3년은 수모와 치욕의 세월이었다. 한겨레가 지난 두 달 동안 끈질기게 추적보도하는 걸 가슴 졸이며 지켜봤다. 한겨레 덕에 제가 명예를 되찾을 기회가 왔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또한 지난 2017년 2월에도 윤 전 총장과 강남의 한식당에서 술을 마셨다면서 “자정이 넘도록 윤석열은 박근혜 수사에 얽힌 무용담을 펼쳐 보였다”면서 “현직 판사 두 명도 함께하는 자리였지만 그 둘은 끼어들 틈이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짜릿한 복수극’을 안주로 삼아 들이켜는 폭탄주. 잔을 돌리는 윤석열의 손길이 점점 빨라졌다”고 한 김 의원은 “나는 그날 태어나서 가장 많은 술을 마셨고, 2박3일 동안 숙취로 끙끙 앓았다. 윤석열이 ‘말술’임을 몸으로 확인한 자리였다”고도 적었다. “두 차례 만남 어디쯤에 ‘불구속 수사’라는 방침이 끼어들 수 있었을까”라고 되물은 김 의원은 “원한과 복수 사이에 정녕 관용이 들어설 여지가 있었던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아울러 김 의원은 “윤석열이 박근혜 불구속을 생각했다는 것은 2019년 4월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박근혜가 건강을 이유로 형 집행 정지를 신청했을 때 이를 허가하지 않았던 사실과도 배치된다”고 날을 세웠다.
김영배 최고위원도 다음 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자신이 수장이던 검찰 조직에 책임을 떠넘기면서 친박표를 구걸하고 있다”며 “박쥐도 이런 박쥐가 없다”고 비난했다. 강병원 최고위원도 “윤 전 총장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당시 검찰 수장이었던 본인에 대한 부정이고 촛불을 들었던 국민을 부정한 충격적 발언”이라며 “뻔뻔함에 국민들은 기가 찰 노릇”이라고 말했다.
이낙연 전 대표는 TBS라디오에 출연해 “당내 기반이 뚜렷하지 않은 분이라면 본인 준비가 확실하거나 국민적 신망이 있거나 해야 하는데, 둘 다 취약하다는 게 드러나고 있지 않으냐”고 지적했다.
야권에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홍준표 의원은 페이스북에 “보수를 궤멸시킨 사람이 이제 와서 전직 대통령을 수사할 때 불구속하려 했다는 거짓말을 스스럼없이 한다”고 지적했고, 김태호 의원도 “윤 전 총장의 언급은 스스로를 부정할 뿐 아니라 비겁해 보이기까지 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원희룡 전 제주지사는 “탄핵은 인정해야 한다”면서 “내가 구속한 게 아니라고 하는데, 책임을 회피하거나 책임을 축소하는 건 비겁하다”고 비판했다. “(탄핵) 책임 회피나 책임 축소를 가지고 서로 이야기하는 건, 나는 오십보밖에 도망 안 갔다, 나는 백보 도망갔다고 하는 것”이라고 한 원 전 지사는 “그게 오십보백보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도 “전혀 알지 못하는 내용이다. 그런 일이 있지 않았다”라면서 “내가 알고 있는 내용과 차이가 많다”고 반박했다.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도 “까마귀 고기를 삶아 드셨나”라고 비꼬았다. 조 대표는 보도자료를 통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박근혜 대통령 구속 수사에 반대했다고 말했다니 무슨 정신 없는 말인가”라며 “예나 지금이나 거짓 짜맞추기에 변한 게 없다. 문재인 정권의 ‘내로남불’을 제대로 배웠다”고 비난했다. 그는 “거짓 탄핵과 이후의 수사 과정에서 윤이 무슨 짓을 했는지 국민들은 다 알고 있는데 까마귀 고기를 삶아 드셨나”라고 되묻기도 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