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 목격자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전두환(90) 전 대통령이 항소심에 출석했다. 광주로 출발할 당시 손을 흔들던 전씨는 11시간 만에 경호원의 부축을 받으며 귀가했다. 그는 법정에서도 꾸벅꾸벅 졸다 재판 시작 25분 만에 가슴이 답답하다고 호소해 결국 퇴정했다.
전씨의 사자명예훼손 혐의 재판 항소심은 지난 9일 오후 1시57분 광주지법 201호 법정에서 형사 1부(부장판사 김재근) 심리로 열렸다. 전씨가 항소심 재판에 출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심에서는 2019년 3월, 지난해 4월 두 차례의 인정신문과 지난해 11월 선고기일 등 총 세 차례에 걸쳐 법정에 출석했다.
전씨 측은 “항소심은 법리상 피고인이 불출석해도 재판 진행이 가능하다”며 불출석했지만 재판부가 불이익을 경고함에 따라 출석했다. 전씨는 이날 낮 12시43분 광주지접 법정동에 도착해 경호 인력의 부축을 받으며 법정에 들어갔다.
그는 “발포 명령을 부인하느냐” “광주시민과 유족에게 사과할 마음이 없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신뢰관계인 자격으로 동석을 요청한 부인 이순자씨도 함께했다. 이날 재판에선 피고인의 신원을 확인하는 인정신문 절차와 검찰과 피고인 양측이 신청한 증거 조사 및 증인 채택 결정이 이뤄졌다.
전씨는 청각보조장치를 착용하고 질문을 받았지만 상당 부분 알아듣지 못해 부인 이씨가 옆에서 불러주는 대로 답변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신의 이름을 “전두환”이라고 명확하게 말했지만 생년월일과 주소, 본적의 세부 내용은 이씨의 도움을 받아 답했다. 직업에 대해서도 “현재 직업이 없다”고 말했다.
인정신문이 끝나자 이전 재판 때와 마찬가지로 피고인석에 앉아 꾸벅꾸벅 졸다가 재판이 시작된 지 25분 만에 건강이상을 호소했다. 부인 이씨는 재판 도중 경호원을 통해 재판부에 “식사를 못 하시고 가슴이 답답하신 것 같다”고 전달했다.
재판부는 전씨에게 호흡곤란 여부를 묻고 퇴정 후 법정 밖에서 대기하며 휴식을 취하도록 했다. 이후 재판이 끝날 무렵 전씨를 다시 불러 진행 상황을 설명하고 2시29분 재판을 종료했다. 재판부는 전씨의 변호인이 신청한 현장검증 조사는 하지 않고 증인만 일부 채택하겠다고 밝혔다.
정웅 당시 31사단장에 대한 증인 신청도 기각했다. 당시 지휘관 지위였으므로 명령권자를 규명하기 위해 건강상태가 양호하면 신문할 수 있겠지만 우리 나이로 99세의 고령이고 현재 건강상태를 알 수 없다는 이유였다.
장사복 전 전교사 참모장 등에 대한 증인 신청도 최고 명령권자가 아니고 기존 증인들과 큰 차별성이 없어 기각했다. 다만 당시 광주로 출동했던 506항공대 조종사 중 1심에서 불출석한 증인 4명에 대한 증인신문을 하기로 했다.
회고록 편집·출판에 관여한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에 대한 증인 신청도 받아들였다. 재판장은 “40년 전 전일빌딩에서의 상황을 동일한 조건에서 재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이고 군부대에서 해줄 의무도 없다”며 “실익이 없어 채택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재판 말미에 “검사님께 참고로 말씀드리면 재판 지연은 하나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 증인 신청이 많아지면 1주일에 두 번도 재판할 수 있다”며 재판을 지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재판부는 채택된 증인들이 출석하는 대로 다음 기일부터 증인신문을 하기로 했다.
5·18기념재단과 오월 3단체(유족회·부상자회·구속부상자회)는 이날 광주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두환은 성실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재판부도 더는 전두환의 방어권을 과도하게 보장해서는 안 된다”고 규탄했다. 다행히 이날 법원 주변에서 별다른 충돌은 없었다.
전씨는 이날 광주로 출발한 지 11시간 만에 서울 연희동 자택으로 귀가했다. 이날 오전 8시25분 부인 이씨와 함께 검정색 세단을 타고 광주로 출발한 전씨는 오후 7시32분 연희동 자택에 도착했다. 승차 전 취재진을 향해 손 인사를 하던 전씨는 도착할 땐 수행원의 부축을 받고서야 차에서 내렸다. 출발하기 전부터 전씨를 규탄하던 시민과 유튜버, 취재진의 모습은 사라지고 취재진 10여명만 대기하는 등 한산했다. 전씨의 다음 재판은 오는 30일 오후 2시에 열린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