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전 서울 실종 여성…“당시 경찰, 강력범죄 수사 안 한듯”

입력 2021-08-10 00:31 수정 2021-08-10 00:31
24년 전 실종된 여성의 시신을 발굴하기 위한 작업. 연합

24년 전 서울에서 사라진 20대 여성이 남자친구에게 살해돼 암매장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가운데 당시 실종자를 찾기 위한 경찰의 수사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가족의 가출 신고를 받고도 강력범죄를 염두에 둔 수사를 진행했다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아 피해자의 생명을 구할 기회를 놓쳤을 뿐 아니라 공소시효 만료로 범인을 잡고도 처벌조차 못하게 됐다는 지적이다.

9일 전북경찰청 등에 따르면 1997년 서울의 한 경찰서에 A씨(당시 28세)가 사라졌다는 가족의 신고가 접수됐다. 과거 한 공장에서 일했던 적이 있었던 A씨는 주변과 갑자기 연락이 끊긴 것으로 파악됐다.

이후로도 A씨를 봤다거나 소재를 알고 있다는 제보는 들어오지 않았다. 주민등록증 갱신이나 출입국, 휴대전화 개통, 신용카드 개설 등 생존 반응도 나타나지 않았다.

미궁에 빠진 이 여성의 행방은 그로부터 23년 만인 지난해 여름 전북경찰청이 한 통의 첩보를 입수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첩보의 내용은 A씨가 남자친구에게 살해된 뒤 암매장됐는데, 공범 중 한 명이 주범에게 입막음의 대가로 금품을 요구했다는 것이었다.

24년 전 실종된 여성의 시신을 발굴하기 위한 작업. 연합

수사에 나선 경찰은 2명의 공범으로부터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고 지난 6월 대전에서 주범인 B씨(47)를 체포해 경위를 조사했다.

체포된 B씨는 혐의를 순순히 인정하며 A씨를 매장한 구체적 위치까지 털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당시 A씨와 후배 2명을 렌터카에 태워 이동하던 중 A씨를 여러 차례 폭행하고 목 졸라 살해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김제의 한 고등학교 인근 도로 공사 현장 웅덩이에 A씨의 시신을 암매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범들은 살해 과정에는 가담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A씨 가족들은 갑자기 연락이 끊긴 A씨를 찾기 위해 서울의 한 경찰서에 실종 신고를 했으나, 해당 여성이 성인이라는 이유로 단순 가출 처리됐다.

경찰은 지난해 범인 체포 이후 9차례에 걸쳐 유해가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김제의 한 고등학교 인근에서 지질탐사·굴착 작업을 진행했으나 현재까지 A씨의 시신을 발견하지 못했다.

사건이 일어난 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학교 인근에는 이미 큰 도로가 놓였고, 여러 차례에 걸쳐 공사가 이뤄진 정황이 확인됐다.

경찰은 체포한 B씨 등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할 수 없다고 밝혔다. 살인사건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형사소송법(일명 태완이법) 개정이 2015년 이뤄졌지만, 시효가 남아 있는 사건에 대해서만 소급돼 이 사건에는 적용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처음 신고가 접수된 서울의 한 경찰서에도 당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아 이러한 내용도 피의자 진술을 통해서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가족의 신고를 받았을 때부터 적극적인 소재 파악과 강력범죄를 염두에 둔 수사에 나섰다면, 피의자에 대한 처벌이나 유해 발굴이 지금보다는 순조로웠을 것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전북경찰청 관계자는 “최근에는 여성과 청소년의 실종이나 가출 신고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확인하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며 “해당 경찰서에서 수사를 개시했다거나 여성의 소재를 확인했다는 내용의 자료는 찾아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처벌은 어려워도) 미해결 살인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한 수사기관의 책무는 끝까지 맡아 수행하겠다”고 덧붙였다.

황금주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