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이재용 가석방에 “입장 없다”… MB·朴 사면엔 “시간 없다”

입력 2021-08-09 20:27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윤성호 기자

청와대는 9일 법무부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가석방을 결정한 데 대해 “가석방심사위원회에서 규정과 절차에 따라 진행한 것”이라며 “따로 낼 입장이 없다”고 밝혔다. 다만 물밑에서 법무부와 교감해온 청와대가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이 큰 특별사면 대신 가석방을 선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충격을 최소화하고, 일자리 창출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내부회의에서 이 부회장의 가석방 가능성과 향후 여론 대응방안에 대한 보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이 부회장이 형기 60%를 채워 가석방 조건을 갖춘 만큼 절차와 원칙에 따라 가석방을 유력하게 검토해왔다.

삼성전자는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170억달러(약 20조원) 규모의 투자를 통해 미국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세우겠다는 구상을 밝히며 국가 외교에 도움을 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측면도 이 부회장 가석방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모더나 백신 수급이 지연된 상황에서 국내 모더나 백신을 위탁생산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에 기대를 거는 차원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대권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 측은 “재벌이라는 이유로 특혜나 불이익을 주어서는 안 되고 공정해야 한다는 것이 이 후보의 평소 생각”이라며 “국정농단 공모 혐의에 대해 사면이 아닌 조건부 석방인 만큼 이 부회장이 국민 여론에 부합하도록 반성, 쇄신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측은 “가석방심사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한다. 심사위원들이 합당한 절차에 따라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결정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원론적 입장을 냈다.

야권 대권주자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측은 “법무부 가석방심사위원회의 결정은 정해진 요건과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고, 그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도 “이 부회장 가석방은 국가경제에 대한 기여로 이어져야 한다”며 “이 부회장 가석방이 코로나 장기화로 인한 국가적 경제상황과 글로벌 경제환경을 고려하여 결정된 것인 만큼 이 부회장과 삼성은 국가경제에 대한 큰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이 부회장 가석방과 관련해 “법무부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냈다. 이소연 민주당 대변인은 “정부가 고심 끝에 가석방을 결정한 만큼 삼성이 백신 확보와 반도체 문제 해결 등에 있어 더욱 적극적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전주혜 국민의힘 원내대변인도 “코로나 장기화와 대내외 어려운 경제 여건 가운데 의미 있는 결정을 내린 것으로 평가한다”며 “삼성은 앞으로도 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정의당은 “문재인정부는 오늘 ‘돈도 실력이다’라고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오현주 대변인은 “대한민국이 삼성 공화국이자, 0.01% 재벌 앞에서는 법도 형해화된다는 사실에 분노를 금할 수가 없다”며 “촛불로 세워진 문재인정부가 국민에게 약속한 공정과 평등, 정의의 가치를 스스로 짓밟는 행위다. 살아있는 경제 권력 앞에 무릎을 꿇는 굴욕스러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청와대는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주무부처인 법무부 장관도 계속 말해왔듯이 사면을 진행하기엔 물리적으로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일축했다. 결국 문 대통령 임기 내 광복절 사면은 어려워진 것으로 관측된다.

박세환 이상헌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