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통일 충북동지회’를 수사 중인 국가정보원과 경찰 국가수사본부는 이 조직 구성원들이 북한 문화교류국과 통신한 기록 상당량이 압수수색 직전 인멸됐다고 보고 있다. 또 이들이 2019년 11월 중국 선양에서 2만 달러를 ‘무인 수수’한 것 이외에도 해외에서 2차례에 걸쳐 북측의 ‘공작금’을 받은 일이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압수수색 당시 파손되거나 파일이 삭제된 USB들이 발견됐고, 2017년과 2018년에도 석연찮은 환전 사실이 확인된 데 따른 것이다.
9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이 조직의 연락 담당으로 알려진 A씨(구속)는 국정원 등의 압수수색 전날인 지난 5월 26일 본인의 노트북 컴퓨터에 총 7개의 USB를 접속했다. 하지만 압수수색 때 발견된 USB는 3개뿐이었다. 대신 A씨 거주지에서는 케이스와 연결 단자만 남은 형태로 부서진 USB가 발견됐다. 국정원 등은 이 USB는 A씨가 2018년 상반기 대북 보고를 할 때 활용한 것이라고 의심한다.
수사 당국은 내사 당시에는 A씨가 2018년 초 지령문과 대북 보고문을 소지한 정황을 포착했었다. 이 같은 증거인멸 정황은 A씨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도 강조됐다. A씨 주소지에서는 “중국 왜 갔냐, 캄보디아 아냐, 스테가노그라피(암호화 기법) 프로그램 아냐”라는 말이 적힌 다이어리도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압수수색 직전 A씨 주변인이 받은 경찰 참고인 조사 문답 내용이었던 것으로 국정원 등은 보고 있다.
국정원 등은 A씨가 2018년 6월 1만 달러, 2018년 8월 1만300달러를 서울 명동에서 한화로 환전한 것을 확인하고 이 돈이 해외 접선을 통한 공작금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조직 부위원장 B씨(구속)가 2018년 4월 28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북한 공작조 2명을 접선한 일과 연관됐을 것이라는 의심이다. A씨는 환전 직전 자신의 휴대전화 전원을 껐고 환전 뒤 켰다. A씨에게는 당시 특별한 수입원이 없었고, A씨가 그 무렵 해외를 방문한 일도 없었다고 국정원 등은 파악한다.
수상한 환전은 2017년에도 있었다고 한다. 조직 고문인 C씨(구속)는 2017년 5월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 공작원들을 만난 것으로 조사됐는데, C씨는 귀국하면서 2500달러를 환전했다. 이때 B씨도 500달러를 환전했다. C씨는 그 다음 달인 2017년 6월에는 청주 거주지에서 약 90㎞ 거리인 평택을 방문해 2000달러를 환전만 한 뒤 돌아왔다. 수사 당국은 접선한 사람과 환전한 사람이 다른 것을 추적 회피 의도로 본다.
피의자 4명은 모든 일이 꾸며진 것이며 대선 시기 ‘북풍 공작’이라는 입장이다. 정부가 국가보안법 사건 조작을 목적으로 대대적으로 불법 압수수색을 펼쳤다는 것이다. 이들은 문재인 대통령과 박지원 국정원장 등 35명을 특수절도 혐의 등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소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대검찰청으로 이첩된 뒤 청주지검에 배당됐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