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도쿄 다녀온 ‘이병’ 박지수 “몸상태 정상 아녔지만…동생들에게 미안”

입력 2021-08-09 13:37 수정 2021-08-09 13:41
2020 도쿄올림픽 남자 축구 국가대표 수비수 박지수가 지난달 31일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8강 멕시코전에서 전반을 마친 뒤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병 박지수입니다.”

국가대표 수비수 박지수(27)의 목소리는 군기가 바짝 들어있었다. 도쿄 ‘파병’에서 돌아온 지 닷새째인 그는 자대인 국군체육부대(김천 상무) 건물 4층에 홀로 격리 중이었다. 갑작스러운 올림픽대표팀(이하 대표팀) 소집과 본선 조별리그 3경기, 통한의 마지막 8강전 일정까지 정신없이 2주를 보낸 직후였다. 아직 충격이 가시지 않을 상황이지만 박지수는 격리 와중에도 홀로 방에서 아침 여섯시반 기상과 개인운동, 식사를 반복하며 컨디션을 끌어올리려 애쓰고 있었다. 국민일보는 그와 지난 6일 전화 인터뷰를 나눴다.

도쿄에서 보낸 여름

박지수의 도쿄행은 사실 대표팀의 ‘플랜 A’가 아니었다. 김학범 감독은 유럽 이적 문제가 엮여있는 김민재의 와일드카드 합류를 끝까지 저울질하다 일본 출국 전날인 지난달 16일에서야 박지수를 대체자로 소집했다. 박지수는 지난 6월 21일 입대 뒤 일주일간 기초군사훈련을 받고서 자대에서 신병 교육을 받던 차였다. 그는 “훈련소에서는 발탁 가능성을 생각 못했다. 자대에 가서 김은중 코치에게서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했다.

그에게는 대표팀에 합류하러 가던 순간이 생생하다. 박지수는 “‘꼭 메달을 따고 오라’는 경기대장(대대장)님 앞에서 신고하고 부대를 나서던 순간이 기억난다”고 했다. 그는 “설렘 반 걱정 반이었다”면서 “집에 들러 짐을 챙길 때 잠깐 아내를 본 것, 에이전트와 이야기를 하며 올라가던 길이 생각난다“고 했다. 출국장에서 박지수는 “원래 잘하던 선수라는 걸 보여주겠다”며 뼈있는 출사표를 던졌다. 그는 “내가 왜 와일드카드 발탁이 됐는지 팬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했다.

박지수가 지난달 31일 일본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2020 도쿄올림픽 8강 멕시코전 전반을 마치고 송범근 골키퍼와 대화하고 있다. 요코하마=김지훈 기자

그러나 박지수의 몸 상태는 최상일 수 없었다. 자대에서 나름 개인 운동과 팀 훈련을 두 세차례 했지만 부족했다. 대회 내내 체중도 정상 수준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심지어 김학범 감독과는 초면이었다. 박지수는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긴 했다. 그래도 감독님이 ‘마음 편하게 하라’면서 잘 대해주셨다. 처음 보는 선수가 많긴 했지만 다들 동생이었고 성인대표팀에서 본 동료들도 있어 적응은 어렵지 않았다”고 했다.

박지수의 합류는 ‘절반의 성공’이었다. 선발 투입된 루마니아전과 조별리그 온두라스전에서 안정적인 수비를 선보였지만 중요했던 멕시코와의 8강전에서 대량 실점을 허용했다. 박지수는 형으로서 열심히 준비한 동생들을 돕지 못한 것 같아 많이 미안했다고 자책했다. 그는 “늦게 합류했으니 더 잘했어야 했다. 와일드카드인만큼 중심을 잘 잡았어야 했다”면서 “포지션 상 골키퍼인 범근이(송범근)에게 비난이 쏠렸다. 범근이가 악플에 속상해하는 걸 보고 많이 미안했다”고 했다.

박지수는 멕시코전에서 김학범 감독이 끌려가던 후반 25분쯤 자신을 교체시킨 것 관련해서도 이해할 수 있는 결정이라고 했다. 그는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에서 앞선 경기를 뛴 걸 감독님도 알고 있었다”면서 “몸 상태가 앞선 경기에선 생각보다 괜찮아 다행이었지만 멕시코전에서는 그때쯤 되니 제 체력이 떨어졌다는 걸 감독님이 느낀 것 같다. 옳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시 시작하는 '이병 박지수'

대표팀 외적으로도 박지수의 지난 반년은 파란만장했다. 중국 슈퍼리그(CSL) 광저우 헝다 소속으로 지난 1월 K리그 규정에 따라 입대 전 수원 FC 임대차 입국한 그는 리그 개막 직후인 3월 오심으로 연이어 퇴장을 당했다. 성인대표팀에서 한일전 ‘요코하마 참사’를 당했고 리그에서는 SNS에 판정 항의성 글을 올렸다가 한국프로축구연맹으로부터 징계를 당했다. 생일이던 지난 6월 13일에는 성인대표팀에서 레바논전 승리로 카타르월드컵 2차 지역 예선 통과를 확정 지었고, 8일 뒤 입대를 했다. 올림픽까지 따지면 한 선수가 평생 한 번 겪을까 말까 한 많은 일들이 한 번에 일어난 셈이다.

어려운 시기 가장 힘이 되어준 건 아내다. 박지수는 2019년 6월 성인대표팀 일정차 입국했다가 소개로 아내를 만났다. 항상 배려하고 아껴주는 마음이 좋아 다소 급하게 프러포즈를 했다. 그러나 중국에서의 생활, 코로나19 상황 탓에 그나마 같이 붙어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적었다. 박지수는 “코로나19 때문에 지난해에는 10개월 정도는 떨어져 있었다. 이해해주기 쉽지 않을 텐데 힘이 되어주는 아내가 항상 미안하고 고맙다”고 했다. 부부는 아직 혼인신고만 했을 뿐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다. 코로나19로 인한 휴가 제한 탓에 앞으로도 한동안 보기가 쉽지 않다. 박지수는 “제대하면 식을 올리고 함께 중국으로 갈 생각”이라고 했다.

8일부로 격리가 해제된 박지수는 이튿날인 9일부터 팀 훈련을 시작한다. 다녀와서 다시 격리를 거쳤기 때문에 몸상태를 끌어올려 실전에 나가려면 시간이 다소 걸릴 전망이다. 박지수는 “일단 앞으로도 월드컵 3차 예선이 남아있다. 성인대표팀에 다시 발탁되는 게 우선 목표”라고 했다.

이제 막 신병으로 김천에 합류한 박지수는 전력상 팀에 큰 보탬이 될 전망이다. 김천은 9일 현재 K리그2에서 1위로 다음 시즌 승격이 유력하다. 박지수는 “중국에서 생활하는 중에도 K리그 경기를 꾸준히 지켜봤다. 아무래도 (전 소속팀) 경남 FC에 애정이 가장 많아 자세히 봤다”면서 “팀에서는 1부 승격이 이번 시즌 목표다. 신병이지만 힘을 보태도록 노력할 테니 팬들께서도 응원해주시길 부탁한다”고 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