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운명의 날…9일 이재용 광복절 가석방 심사 쟁점은?

입력 2021-08-09 05:46 수정 2021-08-09 10:55
뉴시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가석방 여부를 결정하는 법무부 가석방심사위원회(심사위)가 9일 열린다. 이 부회장이 가석방 대상에 포함된다면 지난 1월 ‘국정농단 공모’ 혐의로 수감된 지 207일 만에 일선으로 복귀하게 된다.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는 이날 정부과천청사에서 심사위를 열고 8·15 가석방 대상자 심사를 진행한다. 심사위는 대상 명단을 검토한 뒤 재범 위험성과 범죄 동기, 사회의 감정 등을 고려해 적격 여부를 과반수로 의결한다. 심사위가 가석방 대상자를 추리면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결재로 확정된다. 8·15 가석방은 오는 13일 이뤄진다.

‘국정농단 공모’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부회장은 지난 1월 18일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고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2018년 2월 5일 석방된 지 1078일 만이었다. 이번에 박 장관의 결재로 이 부회장의 가석방이 최종 결정되면 재수감된 지 207일 만에 재차 석방되는 셈이 된다.

물론 가석방되더라도 사면과는 달리 형을 면제받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준수사항이 따른다. 경영활동에 어느 정도 제약이 있는 만큼 재계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재차 사면론이 흘러나올 가능성도 거론된다. 서울구치소에서 복역 중인 이 부회장은 지난달 말로 형기 60%를 채운 것으로 알려져 이번 심사 대상에 올랐다. 또 수용생활 중 큰 문제 없이 지낸 모범수로 분류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의 경우 진행 중인 수사·재판이 있기 때문에 교정시설에서 먼저 검찰·법원에 재차 수감될 가능성이 있는지 등을 의견 조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삼성 경영권 승계 의혹’으로 재판받고 있고, ‘프로포폴 투약 혐의’로도 기소된 상태다. 심사위는 해당 의견도 함께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에 접수된 이 부회장의 가석방 관련 탄원서도 심사위에 참고사항으로 올라갈 예정이다. 재계와 시민단체 등은 각각 가석방 찬성·반대 탄원서를 법무부에 다수 접수했다. 비중은 반반 정도로 전해졌다.

재계는 그동안 미·중 패권다툼 등 반도체 위기상황 속에 이 부회장의 역할을 강조하며 지속적으로 사면을 요청해 왔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손경식 회장을 중심으로 한 경제5단체는 지난 4월 사면 건의서를 청와대에 제출했고, 한·미 정상회담 이후 청와대에 초청된 SK그룹 최태원 회장 등 4대 그룹 회장도 문재인 대통령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사면을 건의했다.

그러나 최근 참여연대를 비롯한 1000여개 시민단체들이 연일 이 부회장의 가석방을 반대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기업 성장을 이유로 이 부회장이 가석방된다면 기업 범죄가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정치권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친문 초선인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만일 내일 이 부회장에 대한 가석방 결정이 이뤄진다면 그 가석방을 법 앞에 평등한 집행이라고 보겠느냐, 아니면 역시 ‘법 위의 삼성’ ‘살아 있는 경제권력 삼성’이라는 신화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겠느냐”며 “후자로 인식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며, 이 점을 우려한다”고 했다.

오 의원은 “죽은 정치권력의 사면에는 반대지만 살아 있는 경제권력의 가석방은 침묵이냐”며 “전직 대통령 사면 여부에 우리 당 대선 후보 다수가 반대 의사를 밝혔다. 그렇다면 이재용 가석방 여부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혀야 하지 않겠느냐”고 요구했다. 오 의원에 앞서 민주당 대권 주자인 박용진 의원이 이 부회장의 가석방에 반대 의견을 밝혔었다.

박 의원은 이날도 페이스북에서 “삼성전자라는 기업을 상대로 한 범죄로 구속된 사람이 기업을 위해 풀려나야 한다는 논리의 허망함은 물론이고, 0.1% 이하의 가석방 대상자 중 한 명이 이재용이 된다면 이명박 정권 시절 ‘이건희 원포인트 사면 논란’ 이상으로 우리 정부에 부담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당 유력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재벌이라고 불이익을 줄 필요 없다’고 말한 것을 겨냥하면서 “(이 지사는) 지난 대선에서 ‘이재용 등 국정농단 사범 사면 불가 입장을 공동 천명하자’며 문재인 당시 후보에게 공개적인 압박을 가했다”며 “그러다가 최근 경선과정에서는 우왕좌왕하고 있다. ‘불이익’이라는 말을 하는 것은 누가 봐도 눈 가리고 아웅하는 태도”라고 비난했다.

그동안 정의당에서도 이 부회장의 사면을 강하게 반대해 왔다. 심상정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이번에도 삼성과 총수 일가는 특혜의 대상이 됐다. 그 특혜의 자리에 온갖 의혹의 냄새가 진하게 풍긴다”며 “이 부회장이 가석방된다면 문재인정부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 면죄부를 주는 셈”이라고 밝혔다. 이어 “위원회의 가석방 결정은 사법체계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초래하고 국가의 기강을 무너뜨린 또 다른 국정농단 사건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의당 지도부는 9일 오전 9시 정부과천청사 정문 앞에서 이 부회장의 가석방 불허를 요구하는 기자회견과 시위를 할 계획이다.

이처럼 이 부회장의 가석방을 두고 찬반 논쟁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삼성 임직원들은 이 부회장의 가석방과 경영 복귀를 조심스레 기대하고 있다. 이 부회장이 수감돼 있는 동안 삼성전자의 주력인 메모리 부문에서 미국의 마이크론과 SK하이닉스가 앞지르는 등 ‘삼성전자의 초격차’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가 따라잡아야 할 파운드리 경쟁사 대만의 TSMC와는 점유율 격차가 더 벌어지기도 했다. 인텔까지 파운드리 사업 재진출을 선언하며 대규모 투자와 인수·합병(M&A)으로 삼성전자를 압박하고 있다. 올 2분기 일시적인 메모리 호황으로 삼성전자의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인텔과 TSMC를 제치고 글로벌 반도체 1위 자리에 올랐지만, 주가는 삼성전자의 불확실성을 더 높게 평가하며 좀처럼 7만∼8만원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이 부회장이 복귀한다면 가장 먼저 삼성전자가 파운드리를 포함한 시스템 반도체에서 1위를 달성하겠다는 ‘비전 2030’ 목표와 초격차 전략부터 재점검할 것으로 업계는 관측하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 속에 미국 등의 투자 결정이 속도를 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최종 의사결정자인 이 부회장이 복귀하면 지지부진하던 인센티브 협상이 진전을 보이면서 투자결정이 빨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현재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을 비롯해 텍사스주 테일러, 애리조나 인근 굿이어 및 퀸크리크, 뉴욕의 제네시카운티 등 5개 지역을 후보지로 올려놓았으나 최종 결정이 지연되고 있다.

M&A도 가시화할 가능성이 크다. 앞서 엔비디아(ARM)·AMD(자일링스)·SK하이닉스(인텔 낸드사업부) 등이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유망 기업 인수에 나섰고, 삼성전자의 경쟁사이자 최대 스마트폰 칩 제조사인 미국의 퀄컴까지 최근 스웨덴의 자동차 부품업체 ‘비오니어’ 인수 입찰에 가세하며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합종연횡이 가속화하고 있다.

반면 삼성전자는 2017년 하만 인수 이후 M&A가 중단돼 있다. 당시 9조원의 거금을 들여 인수한 하만은 아직까지 이렇다 할 수익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올 초 “최근 3년 내 의미 있는 M&A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지난달 “인공지능(AI)·5G·전장 사업 등 다양한 기업을 대상으로 인수를 검토 중”이라고 공개한 만큼 이 부회장의 결단이 뒤따를지 주목된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가석방된다 해도 경영활동이 온전히 자유롭진 못할 수 있다. 가석방은 남은 형기 동안 재범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임시로 풀어주는 ‘조건부 석방’으로, 경제사범에 적용하는 취업제한이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이 이번에 가석방으로 풀려나도 특경가법상 5년 취업제한에 걸려 원칙적으로 경영 현장에 복귀하기 어렵다. 가석방 신분이어서 해외출장도 제한된다.

때문에 이 부회장의 경영활동을 위해선 법무부 장관이 취업제한 대상에서 예외를 인정하는 별도의 승인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의 또 다른 사법리스크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것도 부담이다. ‘부당합병·회계부정’ 사건과 관련된 1심 재판이 진행 중이어서 목요일마다 법원에 출석해야 하고, 프로포폴 불법 투약 혐의와 관련한 정식 재판도 오는 19일부터 열린다.

2개의 재판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이 부회장이 온전히 경영활동에 ‘올인’하기 힘들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가석방돼 복귀하더라도 다른 재판 결과에 따라 또다시 실형을 살 수도 있다”며 “이 부회장과 삼성의 미래는 여전히 가시밭길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