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보다 ‘투지’에 박수…변화하는 한국 스포츠

입력 2021-08-09 00:01
한국 여자 배구대표팀의 김연경이 8일 도쿄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경기가 잘 풀리지 않자 아쉬움에 공을 물어뜯고 있다. 도쿄=김지훈 기자

올림픽 무대에서 성적은 그리 중요치 않았다. 수년간 피와 땀을 흘려가며 준비한 선수들은 전 세계 스포츠인들의 축제를 함께 즐기고 도전하는 것 자체에 의미를 뒀다. 선수들의 도전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신의 한계를 딛고 끝까지 투지를 보여준 선수들에게는 찬사와 박수를 보냈다. 다만 올림픽에 임하는 태도를 두고 논란이 됐던 이들에게는 싸늘한 비난이 쏟아졌다.

2020 도쿄올림픽이 8일 막을 내렸다. 한국은 금메달 6개와 은메달 4개, 동메달 10개를 따내며 종합 순위 16위로 대회를 마쳤다. 이번 대회에선 유독 4위에 오른 한국 선수나 팀들이 많았다. 총 12개 종목에서 감동을 안겨준 4위가 나왔다.

넘어진 채로 공을 바라보는 김연경. 도쿄=김지훈 기자

4위의 감동을 선사한 한국 여자 배구대표팀. 도쿄=김지훈 기자

메달권 진입에는 실패했지만 선수들의 투지와 열정에 국민들은 열광했다. 여자 배구대표팀이 대표적이다. 한국 여자배구는 대회 마지막 날 동메달 결정전 패배로 4위가 확정됐다. 그러나 마지막 올림픽 출전을 알렸던 ‘주장’ 김연경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대표팀에 격려와 위로를 아끼지 않았다. “후회하지 말고 끝까지 해보자”던 김연경의 외침은 대표팀 선수뿐 아니라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에게도 하나의 울림이 되어 돌아왔다.

도쿄올림픽 남자 높이뛰기에서 한국 신기록을 써낸 우상혁. 연합뉴스

열악한 환경 속에서 도전을 이어온 비인기 종목 선수들에게도 박수가 쏟아졌다. 남자 높이뛰기 우상혁은 한국 신기록과 함께 4위에 올랐다. 다이빙의 우하람도 남자 스프링보드 3m에서 4위에 올랐지만 불모지에서 새 역사를 개척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역도 여자 87㎏ 이상급과 남자 67㎏급 4위에 오른 이선미와 한명목도 ‘포스트 장미란 시대’를 열 주자들로 주목받았다.

2020 도쿄올림픽 근대 5종에 출전한 전웅태가 7일 도쿄 스타디움에서 열린 경기에서 3위로 골인해 4위로 들어온 정진화와 포옹하고 있다. 도쿄=김지훈 기자

진한 동료애를 보여준 선수들도 큰 감동을 남겼다. 근대 5종의 정진화는 동메달을 딴 전웅태에 이어 결승선을 통과한 뒤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모습으로 눈길을 끌었다. 배드민턴 여자복식의 이소희-신승찬 조는 김소영-공희용 조에게 져 4위에 올랐지만 끝까지 선의의 경쟁을 보여줬다.

쩌렁쩌렁한 '파이팅' 외침으로 투지를 보여줬던 양궁대표팀의 막내 김제덕. 도쿄=김지훈 기자

양궁 펜싱 등 올림픽 인기 종목에서도 성적보다는 선수들의 태도가 더 부각됐다. 고교생 궁사 김제덕은 ‘파이팅’ 외침과 함께 선보인 투지로 큰 사랑을 받았다. 양궁 3관왕 안산도 외적 흔들림 없이 차분한 플레이로 주목을 받았다. 펜싱 남자 사브르 대표팀은 4명의 선수가 끈끈한 팀워크로 일궈낸 금메달이어서 더욱 빛을 발했다.

이다빈이 지난달 27일 일본 지바 마쿠하리 메세A홀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태권도 여자 67㎏ 초과급 결승에서 세르비아의 밀리차 만디치에게 패한 뒤 상대에게 엄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지바=김지훈 기자

패자의 품격도 빛났다. 여자 태권도 은메달리스트 이다빈은 상대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모습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남자 유도의 조구함은 결승에서 아쉽게 졌지만 상대 선수의 팔을 번쩍 들어 올려주며 승리를 축하해줬다.

국민들의 눈에 아쉬움을 남긴 장면도 있었다. 축구대표팀 이동경은 경기 패배 후 상대 선수의 악수를 거부했다가 질타를 받았다. 야구대표팀 강백호는 동메달 결정전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더그아웃에 몸을 기댄 채 껌을 씹는 모습이 중계화면에 잡혀 지적을 받았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