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스 김연경이 내리친 공이 일본 도쿄 아리아케아레나 배구 코트 선 바깥으로 튀어나갔다. 김연경의 마지막 올림픽이자, 45년만의 메달 도전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아쉬울법한 순간이지만 선수들은 코트 위에서 울지 않았다. 둥글게 둘러선 채 ‘수고했다’ ‘잘했어’ 격려를 미소와 함께 쏟아낼 뿐이었다. 시상대 밖에 선 그들에게서 실망이나 슬픔의 감정은 찾기 어려웠다. 김연경은 경기 뒤 기자단 앞에서 “기쁘다. 경기에 후회가 없다”며 비로소 눈물을 흘렸다. 웃음인지 울음일지 모를 묘한 표정이었다.
2020 도쿄올림픽이 8일 폐막식을 끝으로 마무리된다. 31개 종목 237명 한국 선수단도 이날 여자 배구 동메달 결정전과 마라톤을 마지막으로 일정을 끝마쳤다. 코로나19 우려 속 열린 올림픽 와중에도 선수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만의 드라마를 써내려갔다. 선수들은 메달을 따지 못해 죄송하다며 고개 숙여 사죄하기보다 스스로와 상대를 먼저 격려했다. 메달을 따낸 선수에게도, 그렇지 못한 선수에게도 비난보다 응원이 쏟아졌다.
어수선했던 대회 초반 선수단의 분위기를 끌어올린 건 전통적 강자로 군림해온 양궁이었다. 과거 대회와 달리 대회 초반 일찌감치 레이스를 시작한 덕에 관심도 일찍 집중됐다. 새로 생긴 혼성 종목에서 양궁 선수단 막내 안산과 김제덕이 금메달을 따냈다. 이어진 단체전에서는 마흔살 맏형 오진혁이 우승을 결정지은 마지막 화살과 함께 내뱉은 “끝” 한마디가, 경기 내내 우렁차게 울린 김제덕의 “파이팅” 외침이 화제를 모았다. 안산은 혼성과 단체, 개인전을 모두 휩쓸며 세계 양궁 역사상 첫 올림픽 3관왕 왕좌에 올랐다.
메달에 이르지 못했어도 박수 갈채를 받은 선수는 많았다. 수영 기대주 황선우는 자유형 200m와 100m에서 각각 7위와 5위에 오르며 ‘포스트 박태환’으로 자신의 이름 석자를 각인시켰다. 100m 준결선에서는 47초56으로 아시아신기록을 달성했다. 목표에 못 미쳤지만 당당하고 ‘쿨한’ 모습이 화제가 됐다. 다이빙 우하람은 3m 스프링보드 결선에서 한국의 다이빙 역대 최고 성적을 경신했다. 육상 높이뛰기 우상혁은 대선배 이진택이 1997년 세운 한국신기록 2m34㎝ 을 1㎝ 더 높게 뛰어넘으며 한국 육상 역대 올림픽 최고 순위인 4위에 당당히 올라섰다.
탁구에서는 만 열일곱 ‘신동’ 신유빈이 주인공이었다. 세계적 명성의 베테랑 선수들을 상대하며 물러서지 않는 당찬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단식에서 16강 진출에 실패했고 단체에서도 8강에 머물렀지만 실망보다는 다음 올림픽을 향한 응원과 기대의 메시지가 더 많이 쏟아졌다. 신유빈보다 한 살 많은 스포츠클라이밍 서채현도 결선에서 기대보다 부진했지만 예선에서 전체 2위까지 오르는 등 다음 대회를 기대하게 했다. 금 수확에 처음 실패한 태권도에서도 은메달 이다빈의 ‘버저비터 헤드샷’, 혈액암을 극복한 동메달 인교돈의 이야기가 관심을 받았다.
기계체조에서는 1996 애틀란타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여홍철의 딸 여서정이 한국 여자 기계체조 최초로 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올림픽 역사상 최초의 부녀 메달리스트다. 도마의 신재환은 한국 기계체조 역사상 두번째 금메달을 따냈고, ‘펜싱 어벤저스’로 불린 남자 사브르 대표팀도 단체전에서 금 맛을 봤다. 지난해 대표팀 최초 코로나19 집단감염이라는 불명예를 쓴 펜싱 여자 에페 선수들은 단체 결승에서 금메달을 내줬지만 앞선 준결승에서 세계 최강 중국을 꺾었다. 근대 5종에서 전웅태의 첫 동메달과 함께 자신의 세번째 올림픽 도전을 4위로 마친 주장 정진화의 사연 역시 지켜보는 이들에게 감동을 안겼다.
절대 약체로 평가받은 선수들의 열세 속 분전도 박수를 받았다. 본선 12개 팀 중 최약체로 평가받은 여자농구는 조별리그 3전 전패에도 불구, 강호들과 접전을 펼치며 한국 농구의 부활 가능성을 보여줬다. 첫 올림픽에 나선 남자 럭비는 마지막 한일전까지 5전 전패를 했지만 절대적 약세인 전력에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며 갈채를 이끌어냈다. 아시아 요트계의 절대 강자 하지민은 4번만의 올림픽 본선 도전 끝에 처음으로 결선에 진출하며 역사를 썼다.
조효석 권중혁 기자, 도쿄=이동환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