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지령에 첩보영화 수준 보안… 모뎀·심카드 교체, 알리바이도

입력 2021-08-08 17:08 수정 2021-08-08 18:11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청주 활동가들은 철저한 보안 유지를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북한 문화교류국의 지령을 받는데 사용한 컴퓨터 무선 모뎀은 6개월이 지나면 교체하고, 공작원과의 접선도 첩보영화를 방불케 하듯 이중삼중으로 조심하는 식이다. 이들은 중국에서 공작금을 수령할 때도 알리바이를 조성하고 암호화된 메시지 전송을 약속하는 등 보안에 만전을 기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8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북한 문화교류국은 청주 활동가들에게 보안 수칙에 따라 활동하라고 수시로 지시했다. 2017년 7월 활동가들에게 하달된 지령문에는 컴퓨터 등 설비는 중고를 구입하라는 내용이 포함됐다고 한다. 구매 흔적이 남는 걸 피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컴퓨터를 3년에 한 번, 무선모뎀과 심카드는 6개월이 지나면 1차 교체하라는 원칙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공작원과의 해외 접선도 은밀하게 이뤄졌다. 최근 구속된 A씨는 2017년 5월 중국 북경에서 공작원을 만나기 위해 출국했다. 북경의 한 대학교 앞에서 미리 약속한대로 한 손에는 신문, 한 손에는 물병을 들고 대기하다가 공작원이 나타나자 거리를 두고 따라가 감시가 없는지 확인했다고 한다. 실제 접선은 그 다음 날 택시에서 20여분간 이뤄졌다.

활동가 B씨가 2018년 4월 캄보디아에서 공작원들과 접선할 때도 비슷한 장면이 포착됐다. B씨는 공원에서 만나기로 한 공작원과 서로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각자 다른 택시를 타고 사원으로 이동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사원에서 공작원과 같은 택시로 옮겨 타고 다른 호텔로 이동한 뒤에야 B씨는 또 다른 공작원을 만나 세부적인 임무를 전달받을 수 있었다.

공작금을 받아오고 환전하는 과정에도 철저한 보안이 요구됐다. 이들은 중국에서 공작금으로 2만 달러를 수령할 때 대형마트 무인사물함을 이용했다. 공작금을 받기 전 대련에 들르고, 공작금을 찾은 후에는 북경에 방문하는 등 의심을 피하기 위해 알리바이를 만들 계획도 세웠다. 북한 문화교류국에서는 정확한 공작금 전달을 위해 약속시간이 어긋났을 경우를 대비하기도 했다. ‘10시에 도착 가능하면 10.com이라고 미리 메시지를 보내라’고 지시하는 식이었다. 이렇게 받아온 공작금을 서울의 사설 환전소에서 환전할 때는 휴대전화 전원을 꺼둬 추적을 피했다.

경찰과 국가정보원은 A씨 등의 구속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이러한 범죄의 은밀성을 근거로 들었다고 한다. 활동가들이 스스로의 행동이 위법함을 인지했기 때문에 추적을 피하기 위한 보안에 더 공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취지다. 반면 활동가들은 경찰과 국정원의 이번 수사가 모두 조작됐다고 주장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