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산업계 “산업경쟁력 저하 우려…현실성 의문”

입력 2021-08-09 05:00
윤순진 2050 탄소중립위원회 민간위원장이 지난 5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탄소중립 실현 방향을 담은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와 관련해 정유·화학·에너지 등 산업계에서는 방향성에 공감하면서도 추진 과정에서 산업 경쟁력 약화 등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기후변화 등으로 인해 전력 수요가 늘고 석탄화력 발전 의존도가 높아지는 추세여서 시나리오 실현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진다.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위원회는 지난 5일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을 공개하고 핵심 감축수단과 수준을 다르게 적용한 3가지 안을 발표했다. 1안은 2050년 온실가스 총배출량을 2540만t, 2안은 1,870만t, 3안은 넷제로(0)로 각각 전망하고 있다. 이해관계자 및 일반국민 의견수렴을 거친 뒤 위원회 의결 및 국무회의를 거쳐 10월 말 정부 최종안이 발표될 예정이다.

산업계에서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기조와 맞물려 기존에 탄소 절감 노력이 전반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던 만큼 취지와 방향성에는 공감하는 분위기다. 김녹영 대한상공회의소 지속가능경영센터장은 이날 “2050 탄소중립은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며 기업들도 피할 수 없는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업종별·규모별로 기업이 맞닥뜨린 상황과 여건이 달라 폭넓은 의견수렴을 통해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가장 큰 문제는 시나리오에서 제시하고 있는 목표가 현재 기술 수준, 경제성 등 국내 현황에 비춰봤을 때 다소 비현실적이라는 점이다. 대한석유협회는 “탄소중립 방향성에는 공감하나 연료전환, CCUS(탄소 포집·저장 기술) 등 미래 기술 개발과 상용화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불확실성도 크다”며 “무리한 감축보다는 여건에 맞는 유연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에너지집약형 고탄소 배출 제조업인 석유화학, 정유, 철강 등 업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유, 화학 업계에서는 석탄·LNG 발전 등 기존 에너지원을 일부 활용하면서 CCUS 등 친환경 기술을 적극 활용해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줄이는 시나리오 1안이 그나마 가장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하고 있으나, 업계 현실을 고려하면 그마저 사실상 달성하기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탄소 절감 목표를 급하게 달성하느라 장기적으로 산업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전반적으로 매우 도전적인 목표가 설정된 것으로, 시나리오와 실제 상황의 간극이 발생할 경우 정부의 대안이 있는지도 의문이며, 자칫하면 국가 경쟁력의 급속한 약화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절기상 대서(大暑)인 지난달 22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한국전력 서울지사에 설치된 전력 수급현황판에 하루 중 가장 더운 오후 2시의 전력 소비량이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올 여름 폭염으로 전력수요가 늘면서 석탄화력발전소가 대부분 가동되는 등 석탄화력발전에 대한 의존도도 여전히 높은 상황이다. 전력거래소와 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달 석탄화력발전소는 전체 설비용량 35.3GW 가운데 90%가 넘는 30GW가 매일 가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달 27일 오후 5시에는 전국에 설치된 석탄발전소 58기 가운데 환경개선설비 공사가 진행 중인 삼천포 6호기를 제외한 57기가 가동됐다.

향후 이상기후 등으로 인해 전력 수요가 더욱 늘어날 전망이어서 석탄화력발전을 퇴출하는 것이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발전에서 재생에너지가 80%의 비중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335GW의 설비용량이 필요하지만 실제 활용 가능한 재생에너지 입지 잠재량은 최대 207GW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지애 기자 am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