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도쿄올림픽 여자배구에서 ‘오심’ 관련 대응이 하나의 변수로 떠올랐다. 준결승에 오른 한국 여자 배구대표팀은 그간 심판들의 석연찮은 판정에 지나치지 않은 범위에서 항의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전략을 펼쳐왔다. 한국은 사상 첫 결승 진출이 걸린 4강전의 승부처에서도 이같은 대응 방식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이번 도쿄올림픽 과정에서 거의 매 경기마다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판정 시비를 겪었다. 그럴 때마다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이 비디오 판독을 요청하거나 주장 김연경이 팀 대표로 심판에게 달려가 항의하곤 했다. 이를 통해 상당수 오심은 바로 잡혔으나 일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여자배구, 조별리그부터 끊이지 않은 '판정 논란'
케냐와의 A조 조별리그 2차전에선 판정 논란의 대표적인 사례가 나왔다. 당시 주심은 일본 국적의 스미에 묘이였다. 이 주심은 한국이 3세트 15-12로 앞선 상황에서 상대 손을 빗맞고 나간 공에 대해 김연경의 터치아웃을 선언했다. 우리 선수들의 항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라바리니 감독이 비디오판독을 요청했다. 비디오 판독 결과는 ‘노 터치(No Touch)’. 그런데도 주심은 판독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 경기에선 박정아의 공격 성공 여부를 가리는 비디오 판독 요청에 5분여 간 경기가 중단되기도 했다. 그런데 한국이 요청한 볼의 ‘인아웃’ 상황 대신 ‘네트터치’에 대한 비디오 판독이 이뤄져 논란이 됐다. 결국 한국은 비디오 판독 후 별다른 이득을 보지 못한 채 경기를 진행해야 했다.
조별 리그 한일전에서도 판정 시비가 있었다. 김연경은 3세트 24-22로 앞선 상황에서 공격을 시도해 상대의 터치아웃을 이끌어냈다. 그런데 주심이 아웃 판정을 내렸다. 이때 비디오 판독이 ‘신의 한수’가 됐다. 김연경의 득점이 인정돼 한국은 3세트를 가져왔고, 이날 일본을 상대로 세트 스코어 3대 2의 짜릿한 역전극을 써낼 수 있었다.
한국은 조별리그 첫 경기였던 브라질전에서도 한 차례 비디오 판독의 도움을 받았다. 박정아가 3세트 도중 상대 공격을 손등으로 받아냈지만 실점으로 기록된 것. 이에 라바리니 감독은 심판에게 다가가 항의와 함께 비디오 판독을 요청했고, 판정 번복을 이끌어냈다.
심판 판정에 항의하다 아찔한 레드카드…너무 과하면 승부처에선 ‘독’
한국은 터키와의 8강전에서도 억울한 판정에 대해 항의로 대응하며 심판진과 아슬아슬한 신경전을 이어갔다. 그러나 항의가 지나칠 경우에는 오히려 심판에게 밉보일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준 경기였다.
주심은 이 경기 3세트 한국이 24-23으로 앞선 상황에서 양효진의 속공에 대해 ‘캐치볼’ 파울(공을 잡거나 던지는 행위)을 선언했다. 김연경이 네트를 흔들며 항의하자 주심은 옐로카드로 경고를 줬다. 4세트에는 터키 측의 ‘더블 콘택트’ 주장에 김연경이 재차 항의에 나섰고, 주심은 레드카드를 꺼냈다.
경기 후 김연경은 “사실 후배들을 모았을 때 (심판에 대한) 욕도 하고 그랬지만 레드카드는 예상하지 못했다”며 “그 다음은 퇴장이기 때문에 다들 조심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배구 경기 중 선수가 레드카드를 받으면 상대 팀에 서브권을 넘겨주고 1점을 내주게 된다. 한 점이 절실한 승부처에서 이뤄지는 과도한 항의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적절한 ‘항의’ 팀 하나로 묶어…경기 흐름·주도권·보상 판정 등에 영향
그럼에도 라바리니 감독과 주장 김연경을 중심으로 한 정당한 ‘항의’는 브라질과의 4강전에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심판 판정에 대한 항의는 당장의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 외에도 경기 흐름이나 주도권, 이후 이뤄지는 일종의 보상 판정에 대해 영향을 줄 수 있어서다.
김연경은 8강전을 마친 뒤 “1세트부터 심판 판정이 맘에 안 들었는데, 상대 팀이 항의하면 꼭 다음에 (휘슬을) 불어줬다”며 “우리도 좀 더 강하게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국제대회 경험이 많은 그가 어느 정도 항의를 받아주는 심판이라는 점을 간파해 적극적으로 항의에 나서는 일종의 전략을 썼던 셈이다.
주장 김연경의 항의는 ‘원팀’으로 거듭난 동료들을 더욱 결속시키는 힘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억울할 법한 판정에 답답해 하는 후배들을 대신해 주장인 김연경이 나서면서 더욱 승리욕을 자극한 것이다.
4강전, 브라질과 리턴매치 성사…韓배구, 사상 첫 올림픽 결승 노린다
한국은 올림픽 사상 첫 결승 진출을 바라보고 있다. 4강전 상대는 세계 최강 전력을 자랑하는 브라질(세계랭킹 2위)이다. 4강전은 6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경기장에서 열린다.
한국은 조별리그 1차전에서 브라질과 한 차례 경기를 가진 바 있다. 당시 0대 3 완패를 당했지만 한수 위 강호들을 차례로 물리치고 4강까지 올라온 터라 기세가 남다르다. 브라질을 상대로 한 설욕전이 기대되는 이유다.
브라질을 꺾으면 목표로 잡았던 메달 획득에도 성공한다. 한국은 45년 만에 올림픽 메달을 노리고 있다. 한국 여자배구는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동메달을 목에 건 바 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한다녕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