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서울대 약학대학장에 오유경… 자연계열 최초 女학장

입력 2021-08-05 16:30

서울대 관악캠퍼스 내 약학대학 21동 2층 교수회의실 벽면에는 역대 약학대학 학장들의 사진이 걸려있다. 연임한 사람을 포함해 총 21명이 28대 학장까지 맡았는데 모두 남자 학장들이다. 다음 사진엔 최초로 여성의 얼굴이 걸리게 된다.

서울대는 지난달 오유경(사진) 교수가 취임하며 약학대학 역사상 첫 여성 학장이 탄생했다고 5일 밝혔다. 서울대 약학대학의 기원을 일제 강점기였던 1915년으로 보는 점을 감안하면 106년 만에 첫 여성 수장이 탄생한 것이다.

오 학장의 취임은 약학대학뿐 아니라 서울대 자연계열을 통틀어 첫 여성 학장이 탄생했다는 의미도 지닌다. 음대, 사범대, 간호대, 생활과학대 등 인문계열이나 예체능 계열에선 이미 여성 학장이 배출됐지만 공대와 자연과학대, 의대, 약대 등을 아우르는 자연계열에선 처음이다.

역대 약학대학 학장 선거에서 여성 교수가 입후보한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 학장 투표권은 약학대학 내 전임 교수 46명에게 주어지는데 여성 교수는 11명 뿐이다. 과반의 지지를 받아야 학장에 최종 당선된다. 한 서울대 관계자는 오 학장 당선에 대해 “서울대 내 꼰대스러운 남성 이기주의 문화에 균열이 가고 있다는 방증”이라면서 “늦었지만 세대 교체의 물꼬가 트인 것”이라고 평가했다.

오 학장은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여성 과학자로 살아온 삶에 대해 여러 차례 강조했다. 1982년 서울대 약학대학에 입학한 오 학장은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치고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이후 2년간 하버드대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한 뒤 1996년 한국으로 돌아와 SK케미칼 연구소, 특허청 심사관 등을 거쳐 2009년에 서울대 약학대학 부교수로 임용됐다.

그는 “미국에서 귀국해 교수가 되려고 전국에 있는 25개 대학에 원서를 냈는데 면접 때마다 ‘아이는 누가 키웁니까’라는 질문을 숱하게 받았다”라며 “당시에는 ‘여성 단체를 하나 만들고 싶다’는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고 웃었다. 그는 “먼 길을 돌아 임용된 후에는 ‘나 때문에 다른 여자 교수가 들어오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숙제를 하듯 살아왔다”고 강조했다.

실제 과학계에서는 여성에 대한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이 공고한 게 현실이다. 지난 7월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 분석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여성과학기술연구개발인력은 전체의 20.7%에 불과하다. 특히 경력 단계가 높아질수록 성별 격차는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규채용 시점에 여성 비율은 26.2%이나 보직자나 관리자 비율은 10.6%로 급락했다.

오 학장은 “여성 교수들이 점차 많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소수”라며 “앞으로 후배들이 성별에 상관없이 실력대로 인정받고 활약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오 학장은 또 ‘미래 로드맵 설계 TF’를 구성해 혁신적인 신약 개발 등 앞으로의 20년을 준비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신용일 기자 mrmonst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