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74만건’ 고소·고발 공화국… 대검 ‘신속 각하’ 지침

입력 2021-08-04 17:47

대검찰청이 수사 개시 필요성이 없는 고소·고발 사건을 신속하게 각하 처리하는 지침을 마련, 시행한다. 꼭 필요한 형사처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언론 보도나 SNS 만을 근거 삼아 상대방의 인권까지 침해하는 남(濫)고소·고발이 이뤄지는 데 따른 대책이다. 검찰은 남고소·고발 여부를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인사들의 심의를 거쳐 처리하기로 했다.

대검은 5일부터 ‘각하 대상 고소·고발 사건의 신속 처리에 관한 지침’을 시행한다고 4일 밝혔다. 인권보호관의 사건처리 지연 여부 점검, 검찰 시민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수사 개시 필요성이 없는 고소·고발 사건을 신속하게 각하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대검은 “사건관계인의 인권을 보호하고 적법절차를 확립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사회에서 수사기관을 향한 고소·고발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2016년 68만5301건이던 고소·고발 사건은 지난해 74만3290건으로 늘었다. 이런 급증에는 정치적 논리에 따라 부정확한 의혹을 던지며 검찰을 ‘흥신소’로 활용하는 남고소·고발 관행이 한몫했다. 과거 대검은 비공식적으로 특정 시민단체의 고소·고발 사건의 추이를 따져 봤는데, 100건이 넘는 접수 사건 가운데 기소로 이어진 것은 1건도 없었다는 결과가 확인되기도 했다.

실제 고소·고발 사건이 각하되는 비중은 커지고 있다. 대검은 “평균 약 20% 정도의 사건이 각하되고 있고, 그 비율 또한 계속 증가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는 결국 국가기관의 수사력 낭비는 물론 사회적 비용 증가라는 부작용으로 이어졌다. 정치권과 시민단체가 비대한 검찰권을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검찰권에 기대려는 모습이 모순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빠른 각하 처분은 형식적인 피고소·고발인이 수사절차에서 조속히 해방된다는 뜻이다. 무리한 고소·고발을 했던 이들은 고소·고발인 조사 이후 피고소인 조사가 이뤄지지 않으면 “나는 부르고 피의자는 부르지 않는다”며 또 다른 진정을 제기하는 일도 잦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결국 죄가 되지 않는 사안에 대해서도 피고소·고발인을 불러 조사하는 일이 없지 않았다. 법조계는 ‘사람을 부르는 일’ 자체가 인권 침해였다고 말한다.

법조계는 대검의 이번 지침이 수사 자원의 효율적 분배, 맹목적 진영 분쟁의 감소로 이어지기를 희망했다. 검사 출신인 오선희 법무법인 혜명 변호사는 “어떤 의혹이 있다고 하면 급조한 단체나 인터넷 카페 등에서 고소·고발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수사 자원은 피해자들을 위해 쓰여져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검찰 관계자는 “지침의 시행으로 억울한 피고소·고발인을 수사절차에서 조속히 해방시켜 인권보장 및 적법절차를 확립해 사건이 보다 공정하게 처리될 수 있을 것”이라며 “선택과 집중을 통한 수사와 사건처리로 국민이 필요로 하는 범죄수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결과도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성영 기자 ps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