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도쿄에서 돌아온 ‘도쿄리’ 이동경 “마음 속 아쉬움만 한가득…더 성장하겠다”

입력 2021-08-04 17:30
이동경이 지난달 31일 일본 요코하마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남자 축구 8강 멕시코전에서 골을 넣은 뒤 기뻐하고 있다. 요코하마=김지훈 기자

“제가 제일 힘들어한 거 같아요, 하하” 올림픽을 마무리하고 돌아온 미드필더 이동경(23)의 웃음에는 허탈함이 진하게 배어있었다. 8강 탈락이 확정된 뒤 잔디 위에 누워 울음을 터뜨렸던 그는 아직 아쉬움을 떨쳐내지 못했다. 3년 이상 누구보다 성실하게 준비한 무대가 허무하게 끝나버려서다. “오랜 기간 준비를 정말 열심히 해서 자신감이 있었거든요. 아쉽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것도 안 들어요.”

이동경은 2020 도쿄올림픽에서 가장 빛난 선수 중 하나였다. 8강 멕시코전에서 터뜨린 두 골도 멋졌지만 첫 승을 거둔 루마니아전에서도 엄원상의 골로 인정된 굴절 중거리슛으로 승리의 물꼬를 텄다. 멕시코의 와일드카드이자 핵심 미드필더 루이스 로모는 이동경이 경기 뒤 인터뷰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선수복을 교환했다. 국민일보는 소속팀 울산 현대 훈련장에 복귀한 그와 4일 전화 인터뷰를 나눴다.

허망했던 끝

이동경(왼쪽)이 지난달 31일 일본 요코하마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남자 축구 8강전 멕시코전에서 3대 6 패배로 탈락이 확정되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요코하마김지훈 기자

이동경은 귀국 날인 인터뷰 전날 밤 홀로 기차를 타고 울산에 돌아왔다. 함께 올림픽대표팀(이하 대표팀)에 차출된 원두재, 이동준, 설영우 등 동료들과는 따로 관련된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고 했다. 그만큼 상처가 컸다는 얘기다. 그들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날 오후 진행된 울산 팀 훈련을 소화했다. 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 신화 주인공이기도 한 홍명보 울산 감독은 “개인적으로 속상한 마음도 있겠지만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 빨리 털어내고 새 목표를 찾아 준비하라”며 어린 제자들을 다독였다.

이동경은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훈련량이 정말 많았다. 다들 얕볼 수 없는 상대지만 준비를 열심히 한 만큼 누구든 두렵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선수 각자 아쉬운 상황은 있겠지만, 우리가 못했다기보다 상대가 정말 강하고 좋은 팀이라는 걸 인정해야 했다. 프랑스보다도 셌다”면서 “결국 경기장 위에서 선수들이 상대보다 상황에 대처를 잘하지 못해서 그런 점수가 나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대표팀은 제대로 된 해단식조차 하지 못했다. 오랜 시간 함께한 또래 선수들인만큼 팀 분위기가 유독 좋았던 걸 생각하면 섭섭한 결말이다. 그는 “당연히 분위기가 좋지는 않았다. 경기(멕시코전)가 끝나고 다음날 코로나19 검사를 하고 기다리면서 선수들 몇몇이 모여 이야기 나눈 정도였다”면서 “국내 코로나19 상황도 있고 해서 아무래도 소소하게라도 따로 기념하는 자리를 만들기조차 어려웠다. 그런 점도 좀 아쉽다”고 했다.

아쉬운 결말 뒤

요코하마=김지훈 기자

김학범 감독은 패배 뒤 “고개 숙일 필요 없다”며 선수들을 다독였다. 이동경은 “감독님은 8강이라는 성적도 충분히 자신감을 가질만하다고, 너희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하셨다. 경기에 빠진 선수, 원하는 만큼 뛰지 못한 선수들에게도 사과하셨다”고 했다. 그는 “감독님은 정말 정이 많은 분”이라면서 “밖에서는 무서운 사람으로 보이지만 저희한테는 정말 따뜻하고 착한 분이다. 아버지 같은 캐릭터라 선수들이 많이 따랐다”고 했다.

사실 올림픽 8강은 손가락질받을 성적이 아니다. 역대 9번 참가한 올림픽 본선에서 대표팀이 8강 벽을 뚫어낸 것은 런던올림픽 단 한 번뿐이다. 5번은 아예 조별리그도 통과하지 못했다. 8강 상대인 멕시코는 준결승에서 우승후보 브라질을 상대로도 접전을 벌이다 승부차기로 패했다. 다만 이번 대표팀은 김 감독이 공표한 목표가 메달권이었던 데다 유독 축구계가 K리그까지 희생해가며 전폭 지원을 했기에 팬들의 비난도 더했다.

이동경은 김 감독을 향해 무리한 차출과 고강도 체력훈련을 이유로 비난하는 K리그 팬들에게 이해를 부탁했다. 그는 “결국 좋은 결과를 가져오진 못했지만 (준비 과정에서) 선수들 각자가 많은 걸 배웠다. 개인마다 많이 발전했고 성장할 계기가 됐다”면서 “리그에서 많은 희생을 한 게 사실이다. 팬들은 좋지 않게 생각하실 수 있다. 하지만 감독님도 각자 위치에서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다 나온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부디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축구공은 계속 구른다

이동경이 3일 소속팀 울산 현대 훈련장에서 훈련에 열중하고 있다. 울산 현대 제공

첫 경기인 뉴질랜드전 패배 당시 이동경은 때아닌 ‘악수 논란’에 시달렸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출신 유명 공격수 크리스 우드가 악수를 청하자 이를 거절했다는 이유였다. 대한축구협회가 이를 방역수칙 때문이라며 엉뚱한 변명을 내놓으면서 오히려 논란이 커졌다. 이동경은 “져서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정신이 없다 보니 나온 행동”이라면서 “대표팀으로서 제 행동이 개인뿐 아니라 대한민국 이미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는 계기가 됐다. 반성을 많이 했다”고 돌이켰다.

병역면제가 어려워진 이동경은 언제 입대를 할지도 이제 고민을 해야 한다. 이동경은 “대회가 끝난 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 (거취를) 어떻게 해야겠다 생각해보지는 않았다. 이제 계획을 세워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다음 아시안게임 와일드카드 등에 포함될 가능성도 없지 않지만 이동경은 “맘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라면서 “그런 준비보다는 축구선수로서 먼저 더 성장하도록 노력하겠다. 그때 가서 저를 필요로 하신다면 최선을 다해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림픽 무대를 마친 이동경에게 당장 닥친 목표는 소속팀 울산의 우승이다. 울산은 전체 38경기 중 21경기를 치른 이날 현재 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다. 팀의 숙원인 3번째 우승을 이뤄낼 기회다. 이동경은 “올림픽 기간에 너무 많은 응원을 받았다. 감사한 마음뿐”이라면서 “(올림픽에서 보내준 응원만큼) K리그도 사랑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더 좋은 선수가 되도록 항상 노력하겠다. 일단 우승이 목표다. 팬들께서 도와주시고 응원해주시면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당부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