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m였으면 金?” “아마도” 200m선수에 왜 400m 질문나왔나?

입력 2021-08-04 15:56
나미비아의 크리스틴 음보마(18)가 3일 2020 도쿄올림픽 200m에 출전해 은메달을 획득했다. UPI연합뉴스

2020 도쿄올림픽 12일차인 지난 3일, 여자 육상 200m 결선에 참가한 나미비아의 크리스틴 음보마(18)와 베아트리스 마시링기(18)에게 이목이 쏠렸다. 강력한 메달 후보였던 동갑내기 두 사람은 각각 은메달과 6위를 기록했다. 은메달을 딴 음보마는 ‘400m였다면 금메달을 땄을 것 같냐’는 질문을 받았고, “아마도”라고 답했다.

200m에 출전한 선수에게 느닷없이 400m 관련 질문이 쏟아진 배경에는 DSD(Differences of Sexual Development·성적 발달의 차이) 규정이 있다. 선천적으로 남성호르몬 수치가 높은 선수는 ‘특별한 치료’를 받지 않는 한 일부 종목에 참가할 수 없도록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도입한 규정인데, 이번 올림픽에서 처음 적용됐다.

일반적으로 여성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0.12∼1.79n㏖/L(나노몰·나노는 10억분의 1), 남성의 수치는 7.7∼29.4n㏖/L이다. IAAF는 여성이 이 종목에 나서려면 남성호르몬 수치를 5n㏖/L 이하로 6개월 이상 유지하도록 했다.

이 때문에 남성호르몬 수치가 일반 여성보다 높았던 음보마와 마시링기는 주종목인 400m를 포기하고 종목을 바꿔 200m에 출전했다. IAAF는 400m, 400m허들, 800m, 1500m, 1마일(1.62㎞) 경기를 남성호르몬이 경기력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제한 종목으로 뒀다.

DSD 규정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캐스터 세메냐(30)를 둘러싼 논란으로 만들어졌다. 세메냐는 여자 800m 선수로서 두 번의 올림픽과 세 번의 세계선수권대회를 재패했는데, 남성호르몬 수치가 높아 불공평하다는 논란이 인 탓이다.

세메냐는 인권침해를 주장하며 세계육상연맹(IAAF)를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재소했다. 당초 CAS는 세메냐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IAAF가 규정을 유지해 세메냐가 CAS를 다시 제소했을 때는 “새로운 규정은 차별적이지만 선수 사이의 공평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필요하다”고 판단하며 IAAF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세메냐는 CAS 본부가 있는 스위스 연방법원에 판결을 뒤집어달라고 항소했으나 지난해 9월 기각됐다. 법원은 “CAS 판결이 기초적인 공공 질서 원칙을 어겼다고 보기 어렵다”며 “세메냐가 주장한 것처럼 인간 존엄성을 해쳤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이에 세메냐는 “나는 여성 운동 선수가 태어난 그대로 자유롭게 뛸 수 있을 때까지 트랙 안팎에서 싸움을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후 세메냐는 200m로 전향해 도쿄올림픽 출전을 노렸지만 선발전을 통과하지 못했다.

DSD 규정 논란은 지금도 이어진다. 선수의 인격권 침해할 수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일본내분비학회 소속 카시다 켄이치는 아사히신문에 “선수들은 자신이 DSD임을 알리고 싶지 않고 일반의 남녀로서 살길 원한다”며 “선천적인 이유로 스포츠 참가를 부정당했을 경우 자신의 성에 대한 존엄성에 상처를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200m는 DSD 규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단거리는 영향을 안 미치고 중거리에는 미치냐’는 비판도 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