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도쿄에 우뚝 선 ‘韓 여자농구 기둥’ 박지수의 여름

입력 2021-08-04 07:00 수정 2021-08-04 07:00
대한농구협회 제공

2020 도쿄올림픽 조별예선 3경기 리바운드 총 32개(경기당 10.7개) 블록 총 10개(경기당 3.3개). 12개국 144명 선수 중 해당 2개 부문 1위. 숫자가 말해주듯 여자 농구 국가대표 센터 박지수(22)가 도쿄에서 보낸 여름은 올림픽 코트 위 누구보다 뜨거웠다. 세계가 주목한 유망주 박지현의 패기 넘치는 돌파도, 슈터 강이슬의 날카로운 손끝 역시도 골밑을 묵묵히 버틴 박지수가 아니었다면 나오기 어려웠다.

13년 만에 올림픽에 돌아온 한국 여자농구 국가대표팀(이하 대표팀)은 다수 예상대로 세계의 벽을 넘지 못했다. 세계 3·4위 스페인과 캐나다, 유럽 챔피언 세르비아에 차례대로 패하며 조별리그 3전 전패로 도쿄에서 짐을 쌌다. 그러나 그들의 경기력은 단순히 승패로만 구분하기 억울할 만큼 예상을 뛰어넘었다. 그 중심에는 현시점 국내 독보적인 최고 센터이자 유일한 ‘빅리거’ 박지수가 있었다. 국민일보는 전날 도쿄에서 귀국해 자택에서 격리 중인 박지수와 3일 전화 인터뷰를 나눴다.

‘가자미’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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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히 알려져 있듯 박지수의 키는 198㎝다. 국내 현역 여자농구 선수 중 가장 크지만, 단순히 골밑 싸움뿐 아니라 드리블과 득점력까지 겸비한 만능형 센터다. 그러나 농구만화 ‘슬램덩크’의 대사처럼, 이번 대회에서 박지수는 철저히 ‘가자미’가 됐다. 빅맨이 외로울 수밖에 없는 한국 대표팀의 낮은 골밑에서 그는 누구보다 높고 멀리 몸을 던졌고, 또 몸으로 상대를 버티며 동료에게 슛 기회를 열어줬다. 그는 “저에겐 높이 싸움, 제공권에서 밀리면 안 되는 게 가장 먼저였다. 슛을 넣는 건 다음 문제였다”고 말했다.

박지수가 희생을 자원한 데는 이유가 있다. 자신이 버팀목이 되지 않으면 그나마 팀이 비교우위에 선 외곽포를 살릴 수 없어서다. 그는 “한국에서야 제가 크지만 외국팀에는 저만한 키가 적어도 한 팀에 3명은 있다. 그런 부분에서 책임감이 컸다”며 “제가 아무리 페인트존에서 득점해도 2점이다. 2점 싸움으로는 절대 상대를 압도할 수 없다. 제가 희생하고 득점을 많이 못 하더라도 동료가 외곽슛을 편하게 쏘도록 스크린을 많이 하려 했다”고 했다.

사실 박지수가 이만큼 동료들과 호흡을 맞춰 활약한 것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그는 시즌이 진행 중인 미국 여자프로농구 WNBA 소속팀 라스베이거스 에이시스의 미 텍사스주 댈러스 원정경기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뉴욕에서 도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격리 지침 때문에 계획보다 대표팀 합류가 더 늦어지면서 현지 팀 훈련에 단 나흘밖에 함께하지 못했다. 그는 “많이 아쉬웠다. (전주원) 감독님도 더 일찍 함께하지 못해 아쉽다고 얘기하셨다”고 했다.

리바운드와 블록 1위라는 기록을 말해주자 “몰랐다“며 깔깔 웃었지만 박지수는 그럼에도 본인 활약에 “만족 못 한다”고 했다. 특히 높이가 강한 세르비아를 제압하지 못한 데 책임이 크다고 자책했다. 그는 “아무래도 센터 자원 중에서는 제가 중심을 잡아줘야 했다”며 “마지막 경기(세르비아전)를 잘했으면 만족했을 텐데, 지현이(박지현)도 그렇고 언니들이 너무 잘해줘서 충분히 뒤집을 수 있는 상황에 제가 많이 못 해서 미안한 마음이 크다”고 털어놨다. 어린 나이에도 코트에서 짊어진 책임감이 느껴졌다.

다시 만난 세계,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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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농구가 대표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이르렀던 때는 은메달을 딴 1984 로스앤젤레스올림픽이다. 박지수가 아직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이다. 이번 올림픽 전까지 마지막으로 본선에 진출한 건 2008년 베이징올림픽이다. 이 역시 박지수가 초등학교 시절 막 농구공을 손에 잡은 해였다. 박지수는 “대단했다는 이야기만 많이 들었다. 당시 영상을 보지는 못했다”고 했다. 정작 박지수가 농구선수로 성장하면서 올림픽 무대의 여자농구 대표팀을 볼 기회는 없었던 셈이다.

13년만에 돌아온 올림픽 무대지만 대회 전 대표팀을 향한 예상은 대부분 비관론이었다. 박지수는 “지금까지 보여준 게 그 정도이니 그런 예상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아직 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런 이야기를 보면 솔직히 기분이 나빴다”고 했다. 이어 “그 예상대로 결국 3패를 하긴 했지만, ‘우리가 쫄아서 아무것도 못할 팀이 아니구나’ ‘충분히 겨룰만한 자격이 있구나’ 하는 자신감을 얻었다”면서 “다음에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사고 칠만하다’는 예상으로 바꿔놓을 수 있었으면 한다”고 했다.

그는 “첫 경기(스페인전)를 잘했더라면 8강도 갈 수 있지 않았나 아쉽다”고 복기했다. 대표팀은 이 경기에서 전반까지 1점을 앞서며 돌풍을 일으킬 뻔했지만 후반 상대의 강력한 수비와 체력 저하에 고전하며 4점 차로 역전패했다. 그는 “경기 전날 주장 정은(김정은) 언니가 ‘직접 부딪혀보면 너네도 안다. 겁먹을 필요 없다는 걸 느낄 것’이라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경기가 흘러갔다”며 “생각보다 격차가 크지 않다는 걸 실감했다”고 했다.

박지수를 포함해 이번 대표팀에는 어린 선수들이 많다. 좋은 동료들과 함께 예전 선배들 못잖은 강한 팀을 만드는 게 그의 또 다른 목표다. 그는 “저도 그렇고 지현이(박지현)처럼 이번 대표팀에는 어린 선수가 많다. 희망이 있고 앞으로 더 잘할 기회가 많다는 것“이라면서 “앞으로 선배들보다 더 잘해서 당당하게 ‘저희가 더 나은 것 같습니다’라고 이야기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고 했다.


'최초 女감독' 전주원의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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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이번 대표팀의 활약에 놀란 이유는 또 있었다. 사령탑 전주원 감독이 올림픽을 앞두고 워낙 급하게 선임되어서다. 국가대표 구기 종목 최초 여자 감독이라는 화려한 타이틀이 붙었지만, 초보 감독이 감당하기는 무거운 자리였다. 그러나 전 감독의 지휘 아래 대표팀 선수들은 잘 짜인 조직력으로 강호들을 당황하게 했다. 달랑 반년 동안 선수단을 이끈 감독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지도력이었다. 대한농구협회는 올림픽을 끝으로 계약기간이 마무리된 전 감독의 후임을 찾으려 4일 경기력향상위원회를 연다.

박지수는 “함께한 시간이 길지 않았지만, 그 짧은 시간에도 감독님이 팀에 발휘한 영향력이 매우 크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차분하고 조곤조곤하게 선수들에게 자신감과 용기를 북돋우는 지도 방식이 대표팀의 선전에 큰 역할을 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감독님은 언니 같은 스타일이다. 보통 감독님이라고 하면 다가가기 어려운 게 있는데 그런 게 적었다”면서 “저희가 대회 마친 뒤에 감독님께 ‘다음 올림픽도 같이 가셔야 한다’고 했더니 ‘아이고 난 안 된다’고 손을 저으셨다”며 웃었다.

전 감독은 이번 대표팀 감독을 맡기까지 감독 경력이 없었다. 하지만 아산 우리은행 코치로 오랜 기간 선수들을 지켜보면서 각자의 특성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었다. 박지수는 “다른 팀 코치였지만 매 시즌 몇 년간 선수들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신 것”이라면서 “본인 팀이 아니더라도 상대로 붙고 하니 스타일 장단점 확실히 파악하고 계셨다. 각자의 장점을 최대한 끌어올리려 하셨고 그래서 선수들이 감독님이 추구하는 농구를 빠르게 습득한 것 같다”고 했다.


책임감 강한 스물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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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가 태극마크를 단 건 무려 10년째다. 중학교 2학년이던 2012년, 한참 위인 고등학교 1~2학년 언니들과 함께 17세 대표팀에 뽑히면서였다. 그는 “물론 기억한다. 막연히 설레었던 느낌이었다”면서 “지금 대표팀에서 그때 같이 뛴 게 지현(신지현) 언니”라고 기억했다. 그는 “그때는 ‘와 나도 대표팀이다’하는 마음뿐이었지만, 이제는 ‘나라를 대표해서 왔다, 나라 망신시키지 말자’는 생각을 한다. 이번 올림픽도 그런 각오로 나섰다”고 했다.

대표팀 골밑을 맡은 책임감 못지않게 박지수는 ‘한국 여자농구의 얼굴’로서 떠안은 책임도 무겁다. 그가 올림픽 출전권을 따낸 지난해 2월 귀국 기자회견에서 협회에 쓴소리를 한 건 이런 점을 알고 있어서다. 박지수는 “(올림픽 예선 중국전 대패 당시)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무대에서 뛰는 것이 창피하게 느껴졌다”며 외국팀과 연습경기 한 번 하지 못한 채 무방비로 국제무대에 서야 하는 대표팀의 현실을 지적했다. 한국 문화에서 당시 만으로 겨우 스물하나 나이인 선수가 입 밖에 내기 어려운 발언이었다.

박지수는 “그때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았다. ‘괜히 그런 말을 했나, 잘못한 건가’하는 생각도 했다”면서도 “지금도 그렇게 말한 게 옳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저뿐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같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다들 속으로 같은 생각을 하더라도 입 밖으로 내놓지 않으면 바깥에서는 모르고 지나갈 수밖에 없다”면서 “언젠가 누군가 해야 할 말이라면 제가 나서야겠다 여겼다. 좋지 않게 보는 분들도 많겠지만 여전히 같은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협회가 노력해주신 걸 안다. 감사하게 생각한다”면서 “이번 대회가 여자 농구 대표팀 지원과 관련해서 전환점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한국 선수로서는 드물게 선진 농구를 경험한 농구인으로서의 책임감도 있다. 앞서 그는 지난해 10월 농구전문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먼 미래에) 리그 전체 선수들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다”며 WNBA의 선수노조와 에이전트 제도를 국내에 정착시키는 것을 예로 들었다. 그는 국민일보에도 “무지한 상태로 미국에 갔는데 제도가 너무 잘 되어 있어서 충격을 받았다”면서 “매번 노조와 협상을 해서 리그를 시작하는 걸 경험하면서 우리에게도 비슷한 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박지수는 “이런 말을 하면 또다시 논란이 될 수 있다는 걸 안다”고 조심스러워 하면서도 “아직 우리 리그는 (외국과 비교해) 말로만 프로인 것 같다”고 날을 세웠다. 그는 “매년 선수들이 계약 때문에 정말 스트레스를 받는다. 에이전트가 없으니 계약 관련한 룰도 너무 모르고, 회사에서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고 설명하며 “우리가 공무원처럼 선수 생활을 몇십 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노조까지는 아니더라도 에이전트 제도만이라도 생겼으면 한다. 모든 선수가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했다.


농구선수 박지수의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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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의 소속팀은 2개다. 자택에서 격리 중인 박지수는 계획대로면 5일 미국으로 돌아가 WNBA 라스베이거스 소속으로 남은 시즌을 소화한다. 아직 격리 중 출국 인정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아 비행기 표를 끊지는 않았다. WNBA 시즌이 끝나면 다시 국내로 돌아와 청주 KB스타즈 소속으로 국내 프로농구 WKBL 우승을 노린다. 공교롭게도 라스베이거스는 박지수가 참여하지 않은 지난 시즌 파이널까지 진출했다가 무릎을 꿇었고, KB도 지난 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고배를 마셨다.

박지수는 “(KB에서) 이번 시즌 목표는 당연히 우승”이라며 “우승 못하면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정도다. 모든 포커스가 우승에 맞춰져 있다”고 말했다. 대표팀에서 호흡을 맞춘 강이슬도 KB로 이적해와 더 든든하다. 들뜬 목소리로 “이슬(강이슬) 언니랑은 원래도 친하다”고 입을 연 박지수는 “올림픽 마지막 경기가 끝나고 (김완수) 감독님이 수고했다고 연락을 주셨다. 제가 거기다 ‘이슬 언니랑 제 호흡 보셨느냐, 저희 자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답변을 보냈다”면서 웃었다.

당장 돌아가는 미국 무대에서도 박지수는 이뤄야 할 게 많다. 차츰 늘고 있긴 하지만 아직 부족한 출전시간을 늘리는 게 먼저다. 그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더 결과를 보여줘야 많이 뛸 수 있을 텐데 스스로 코트에서 아직 주저하는 게 많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농구 스타일상 실수해도, 성공해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더 뻔뻔해져야 하는데 그렇질 못하다”면서 “비슷한 이유에선지 아시아 선수들이 샤이(shy)하다는 평가가 많다. 그런 평가를 깨는 게 먼저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대표팀 동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자랑스럽다”는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그는 “다들 너무 고맙고 다시 만나서 좋은 경기를 했으면 한다”며 “이번 대표팀 멤버로 함께 뛴 게 굉장히 자랑스럽다. 우리도 약한 팀이 아니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다음번 기회에 임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팬들에게 SNS로 너무 많은 응원을 받아서 어떻게 감사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답은 일일이 못 했지만 모두 읽어봤고 큰 힘이 됐다”면서 “찾아가 뵙진 못하더라도 정말 감사해하고 있다는 걸 꼭 알아주셨으면 한다”고 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