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PIC] ‘펄쩍’ 끌어안은 핵인싸 11년지기…동반 금메달 순간

입력 2021-08-03 16:53
메달을 땄는지, 메달 색이 무엇인지는 중요치 않습니다. 2020 도쿄올림픽에서 선수들이 피·땀·눈물로 그려낸 빅PIC처.
국민일보 [올림PIC]이 소개합니다.

공동 금메달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순간 바심에게 달려가 안기는 탬베리. EPA연합뉴스

“혹시 우리 둘 다 금메달을 받을 수도 있을까요?”

2020 도쿄올림픽 남자 높이뛰기 결선이 열린 지난 1일 일본 도쿄 올림픽 스타디움. 모든 참가 선수들이 주어진 기회만큼 뛰고 난 뒤 심판이 두 명의 선수를 불렀다. 2m39를 실패하고 똑같이 2m37을 기록한 무타즈 에사 바심(카타르)과 장마르코 탬베리(이탈리아)였다. 바심의 질문에 심판이 그렇다고 답하자 탬베리는 펄쩍 뛰어올라 바심의 품에 안겼다.

세계를 향해 도약한 ‘한국 점퍼’ 우상혁(25·국군체육부대)이 4위로 안타깝게 메달을 놓친 그 날. 한 경기에서 공동 금메달을 받는 진풍경이 올림픽 109년만에 나온 순간이었다.

2020 도쿄올림픽 높이뛰기서 공동 금메달을 목에 건 장마르코 탬베리(왼쪽)와 무타즈 에사 바심. AP뉴시스

이야기의 주인공인 바심과 탬베리. 경기 성적도, 심지어 부상 경험마저 똑 닮은 두 사람은 치열한 경쟁 이전에 각자의 기록 경신을 목표로 함께 달려온 친구나 다름없는 사이였다.

두 선수는 모두 2m37을 1차 시기에 넘은 뒤 2m39까지 이어 도전했다. 2m37까지 한 번의 실패도 없이 훌쩍 뛰어오른 두 선수였지만, 천장 높이쯤까지 올라간 2m39에서 둘 다 3차 시기까지 모두 실패했다.

그렇게 바심과 탬베리는 공동 1위에 놓인 상황이 됐다. 감독관은 두 선수를 불러 끝까지 승부를 가려내는 ‘끝장 승부’를 보겠냐며 의사를 물었다. 직전 기록으로 높이를 낮춘 뒤 모두 성공하면 높이를 높이고, 실패하면 다시 낮추는 식으로 최종 승자를 ‘끝까지’ 가려내는 방식이다.

하지만 바심은 감독관의 규칙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공동으로 금메달을 받는 것은 가능한지’를 물었다. 감독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두 선수만 동의하면 된다”라고 답했다.

공동 금메달이 확정된 순간 탬베리는 바심에 뛰어올라 안겼다. AP뉴시스

바심, 탬베리 그리고 막심 네다세카우(벨라루스)까지 모두 2m37을 넘었지만, 바심과 탬베리의 성공과 실패 횟수만 똑같았고 네다세카우는 실패 횟수가 더 많아 3위였던 상황이었다.

“가능합니다…” 라며 끄덕거리는 감독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바심의 손을 붙잡은 탬베리는 환호성을 지르며 바심에게 껑충 뛰어올라 안겼다. 손을 맞잡고 포옹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동의할 필요도 없이 서로의 마음을 안다는 것처럼 보였다.

감독관이 "Possible(공동 메달 수상이 가능하다)"이라고 말을 내뱉은 순간. 트위터 캡처

그렇게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 이후 109년 만에 올림픽 육상에서 공동 금메달이 결정된 순간이 탄생했다.

바심은 “우리는 2m39 점프를 마치고 서로를 바라봤다”며 “이해했다. 더 나아갈 필요가 없었다”라고 결정의 이유를 설명했다.

금메달을 공동 수상한 바심(왼쪽)과 탬베리. AP뉴시스

바심과 탬베리는 같은 종목에서 선의의 경쟁자로 걸어온 것을 넘어서 11년지기 친구 사이가 됐다. 국적도 나이도 다르지만 2010년 캐나다 몽튼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처음 만난 이후 수많은 국제대회 필드를 함께 하며 각별한 우정을 쌓아왔다.

두 사람은 열흘에 한 번꼴로 전화를 해 서로의 안부를 물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됐다. 탬베리는 바심의 결혼식에 초대돼 참석했을 정도다.

공동 금메달이 확정된 순간의 탬베리의 반응. 감격한 모습이다. AP뉴시스

특히 왼쪽 발목에 부상을 입은 경험마저 똑같아 누구보다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었다. 2016년 리우 올림픽을 준비하던 당시 발목 인대가 끊어져 선수 생명이 위기에 처했던 탬베리에게 힘이 돼준 건 절친 바심이었다.

부상으로 리우 올림픽을 포기해야 했던 그는 당시 발목 석고 부목에 ‘2020년 도쿄로 가는 길’이라고 적으며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그렇게 2020 도쿄올림픽에서 탬베리는 빛바랜 석고 부목을 들고 울며 경기장을 누볐다.

탬베리에게 금메달을 걸어주는 바심. 신화뉴시스

바심 역시 2018년 왼발목에 탬베리와 비슷한 부상을 입었지만, 이번에는 탬베리가 바심이 복귀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힘을 불어넣어 준 것으로 알려졌다.

탬베리는 “우리는 높이뛰기 선수로서 가장 심한 부상을 극복했다”며 “놀라운 일이고, 친구와 금메달을 공유하는 건 더욱 아름다운 일이다”라고 밝혔다.


"금메달 하나보다 더 좋은 게 뭔지 아세요?" "두개요!" 라는 트윗을 남긴 바심. 바심 트위터 캡처

두 절친의 기나긴 역사를 알게 된 전 세계의 팬들은 이들의 우정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바심은 “(우리의 우정이) 진정한 스포츠맨십”이라며 “젊은 세대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다”라고 말했다.

이주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