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통신선을 복원한 지 5일 만에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한·미연합훈련 비난 담화가 나온 것을 두고 북한이 연합훈련 취소를 압박하고 남·북·미 관계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일종의 계산된 행보를 보였다는 진단이 나왔다. 겨우 조성된 대화 분위기를 한·미가 걷어 차버렸다는 프레임을 만들어 대남 공세 명분을 쌓으려는 것이란 분석이다.
이종주 통일부 대변인은 2일 정례브리핑에서 김 부부장의 담화 및 한·미연합훈련과 관련한 질문에 “한·미연합훈련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조성하는 계기가 돼선 안 된다는 입장에서 계속 노력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통신선 복원 직후 통일부 고위당국자는 “연합훈련 연기가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북한은 그동안 꾸준히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하며 남측을 압박했지만, 이번엔 통신선 복원을 포석으로 깔면서 그 효과를 배로 키웠다. 자신들이 일상적으로 중단을 요구했던 연합훈련이 아니라 관계 개선의 의지를 꺾어버리는 훈련이란 점으로 부각해 대남·대미 압박 수위를 한층 높였다는 분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가 훈련을 강행한다면 북한으로선 향후 대남 공세를 퍼부을 수 있는 명분을 얻게 된다. 한 대북소식통은 “대남 공세 재개를 위한 명분 쌓기일 가능성, 향후 남북 관계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려는 술책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미연합훈련이 남북뿐 아니라 북·미 간 현안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북·미 관계 악화의 책임을 미국에 전가하고, 이를 통해 대미 협상에서 유리한 입지를 다지는 환기효과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통신선 복원에 김 부부장 담화까지 일련의 과정이 상당히 계산된 행보로 읽힌다”며 “연합훈련 타이밍을 염두에 두고 자신들의 전략적 입지, 남북 및 북·미 관계의 주도권 확보 등을 모두 고려한 전략인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4차 남북 정상회담까지 운운하며 대화 국면을 조성하려 했던 정부로선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이게 됐다. 연합훈련을 조정하려 했다간 대북전단금지법 때처럼 ‘김여정 하명’ 논란이 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보수진영에선 “김여정의 하명 같은 요구에 굴복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일각에선 연합훈련을 중단하면 향후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서 우리가 쓸 수 있는 카드 하나를 버리는 격이란 지적도 제기된다.
군 당국은 훈련 시기와 규모, 방식 등이 여전히 정해지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부승찬 국방부 대변인은 “후반기 연합지휘소훈련의 시기, 규모, 방식 등에 대해선 확정되지 않았고, 한·미 당국에 의해 결정될 사안”이라며 “코로나19 상황, 연합방위태세 유지, 전작권 전환 여건 조성, 한반도 항구적 평화 정책을 위한 외교적 노력 지원 등 제반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미측과) 긴밀하게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