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색 페인트로 다시 덮인 쥴리 벽화… 표현의 자유일까

입력 2021-08-02 16:43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부인 김건희씨를 비방하는 벽화가 그려져 있던 서울 종로구 관철동의 한 중고서점 건물 외벽은 2일 오후 2시35분쯤 흰색 페인트로 덧칠됐다. 페인트공이 흰색 페인트통과 롤러를 들고 건물 외벽에 다가서자 주변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몰려들었다. 서점 직원이 나와 “사장님 지시로 칠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반인인 직원들의 사진은 찍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건물 외벽이 흰색으로 덮이는 데까지는 약 15분 정도가 소요됐다. 낙서처럼 적혀 있던 ‘경인선’ ‘혜경궁’ ‘부끄러운 줄 알아’ ‘YUJI’ 등 문구들이 사라졌다. 지난달 말 벽화가 논란이 된 이후에도 서점 측은 “오기로 놔둘 것”이라고 했었다. 이후 ‘쥴리의 꿈’ 등의 문구는 지우기로 했지만 “맘껏 표현의 자유를 누리셔도 됩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쥴리 벽화가 그려졌던 부분은 지난달 31일 한 보수 성향의 유튜버가 검은색 페인트로 덧칠했다. 이후 그 위에 문재인 대통령, 이재명 경기도지사, 김어준씨 등 여권 인사들을 비난하는 내용의 낙서들이 쓰여졌다. “페미 여성단체 다 어디갔냐”는 노란 글씨도 있었다. 여전히 김건희씨를 비방하는 내용의 문구들도 뒤섞였다. 하지만 이날 오후 흰색 페인트가 덮이며 이 문구들은 더 확인할 수 없게 됐다.

벽화를 확인할 수 있는 골목은 인근 직장인과 상인들의 흡연 장소처럼 쓰이고 있었다. 주변 먹자골목을 지나던 사람들이 골목에 들러 대화를 나누고 사진을 찍었다. 흰색 페인트가 벽면을 덮을 때 아쉬워하는 반응도 있었다. 한편 한 60대 남성은 “이런 걸 그림이라고 그렸냐”고 혀를 찼다.

공인이나 권력자에 대해 비난을 담은 벽화 등이 예술적 표현의 수단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아니면 규제의 대상이 돼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끝없는 논쟁이 펼쳐지고 있다. 예술의 자유는 국민 기본권으로서 보장돼야 하며 공인에 대한 풍자는 더욱 폭넓게 허용돼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다만 모든 표현을 예술의 자유로서 용인할 수는 없으며, 비방이나 선거 개입의 의도가 있다면 제한될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쥴리 벽화’는 아무리 공인이라 하더라도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기 힘들다고 보이는 것들을 토대로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는 풍자는 예술의 자유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판례가 독일에 있다고, 장 교수는 설명했다. 장 교수는 “독일은 비아냥 섞은 정치인 캐리커처를 허용하지만, 교미 중인 돼지로 그린 것에 대해서는 처벌한 판례가 있었다”고 말했다.

글·사진=박성영 기자 ps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