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축하해” 도쿄 코트 수놓은 배드민턴 우정

입력 2021-08-02 16:17 수정 2021-08-02 16:44
배드민턴 김소영과 공희용이 2일 오후 일본 도쿄 무사시노노모리 스포츠플라자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복식 시상식에서 메달리스트들과 다같이 포옹하며 기뻐하고 있다. 도쿄=김지훈 기자

코트 위에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 승부가 거의 기울었다 여길 상황에서도 추격은 포기를 모른 채 이어졌다. 다시 랠리가 시작되고, 공희용(25)이 걷어낸 공을 이소희(27)가 세게 내리치다 네트에 걸리자 환호성과 탄식이 함께 터졌다. 약 48분의 격전 끝에 메달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네트 아래로 허리를 숙여 만난 넷은 이내 서로를 끌어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네 선수의 등에 각자의 이름 이니셜과 함께 ‘KOREA’ 글자가 선명했다.

한국 국가대표 선수끼리 메달을 걸고 맞붙은 승부가 결판이 났다. 여자 배드민턴 국가대표 김소영(29)·공희용 조는 2일 일본 도쿄 무사시노노모리 플라자코트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 복식 동메달 결정전에서 또다른 한국 조 이소희·신승찬(26) 조를 세트점수 2대 0(10-21 17-21)으로 이기고 동메달을 차지했다. 한국 배드민턴 선수단의 이번 올림픽 유일한 메달이다. 이로써 한국 배드민턴은 1992 바르셀로나올림픽부터 8개 대회 연속 메달 기록을 이어나갔다.

경기 뒤 믹스트존에서 넷은 다시 포옹을 나눴다. 김소영은 “그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것을 알지만, ‘미안하다’고 했다. 소희와 승찬이가 어떻게 준비했는지 알고, 어떤 마음일지 잘 알아서 미안하고 수고했다고 했다”며 울먹였다. 이소희는 “서로 너무 열심히 준비한 것을 안다. 결승에서 만나면 좋았을 텐데, 동메달 하나를 놓고 겨루는 게 잔인하기도 했다”며 “동메달을 따서 누구보다 좋았을 텐데 표출도 못 하고 마음껏 기뻐하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미안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해줬다”고 했다.

두 조는 선수촌에서도, 훈련 때도 경기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일지라도 서로의 경기력에 영향을 미쳐선 안된다는 이유였다. 김소영은 “오늘 아침도 같이 먹고 나왔다. 늘 하던 대로”라며 “배우 송강 이야기를 하고 드라마를 같이 보면서 밥을 먹었다”고 했다. 신승찬은 “보기 싫었는데 소영 언니가 계속 보라고 해서 (드라마에) 빠졌다. 송강을 보고 설레서 콩닥거린 게 여기까지 왔나 보다”라며 장난 섞인 투정을 하기도 했다.

중학교 시절 만나 2011·2012년 함께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을 차지했던 14년 지기 친구 이소희와 신승찬은 다음 기회를 노리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신승찬은 “(이소희는) 저에게 가족 같은 소중한 존재다. 같은 날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같은 해에 태어나서 없으면 허전한 존재가 됐다”며 “소희가 저를 받아준다면 계속 같은 조로 뛰고 싶다”고 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