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제주에서 중학생 A군(16)을 살해한 백광석(48)의 자해를 막기 위해 경찰이 교대로 24시간 동안 유치장에 함께 입감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경찰의 안전이 무시된 행정력 남용”이라는 내부 반발이 터져 나왔다. 피의자 안전을 위해서라지만 뚜렷한 매뉴얼이 없어 현장 경찰이 무작정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 고충도 커지고 있다.
서울의 한 경찰서에서 유치장 관리를 했던 A경사는 2일 “‘눈 깜빡하는 사이에 일이 터질 수 있다’는 생각에 매일 긴장하며 지냈다”고 털어놨다. 그는 “유치장에 입감된 피의자는 주로 화장실에서 자해 시도를 하는데, 24시간 밀착 감시를 하면 ‘인권 침해’라는 민원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관리가 소홀했다’는 지적을 받는 등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앞서 제주동부경찰서는 옛 동거녀의 중학생 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백광석이 지난달 22일 유치장 화장실에서 머리를 벽에 받으며 자해를 시도하자 경찰이 교대로 유치장에 함께 들어가 관리하도록 해 논란이 일었다. 제주경찰직장협의회는 “살인 피의자 자해를 방지하겠다고 경찰관이 함께 감금된 유례없는 사건”이라고 반발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피의자를 지키겠다고 경찰의 인권을 무시한 코미디가 벌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장에서는 종종 발생하는 피의자 사고 탓에 손을 놓고 있기도 어렵다고 토로한다. 실제로 유치장에 입감됐던 피의자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종종 벌어진다. 2018년 해남경찰서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살인 혐의로 유치장에 입감된 피의자는 화장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피의자를 화장실에 들여보낸 경찰이 문 앞에서 깜빡 잠이 들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리 부실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들을 지켜본 A경사는 “피의자를 방치한 건 문제지만, 인력난 등 환경적 요인 탓에 극한의 피로감을 가진 경찰의 고충이 나태함으로 매도됐다”며 “흔하게 벌어지는 유치장 소란 행위 가운데 실제 자해 위험 정도를 경찰이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 난감하다”고 전했다.
피의자의 과거 병력을 알기 어려워 사고가 날 우려도 있다. B경장은 지난해 부산구치소에서 사망한 공황장애 수감자를 떠올렸다. 당시 그가 발로 차는 등 폭력적 행동을 보이자 교도관은 CCTV가 있는 공간으로 수감자를 옮긴 뒤 보호장비를 착용시켰다. 도주·자해 또는 타인에 대한 위해 우려가 클 때는 위력으로 보호장비를 착용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감자는 14시간 만에 의식을 잃고 사망했다. 부산구치소 측은 응급 처방 등을 소홀히 한 것으로 확인됐다. 구치소 이전 유치장 단계에서는 피의자 정보가 더욱 제한돼 병력을 파악하지 못해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B경장은 “남의 일 같지 않았다”며 “경찰도 유치장 수감자에 대해 보호장비를 착용시켜 행동을 제한할 수 있는데, 도리어 흥분을 자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교도소는 의료진 접근성이 높지만 경찰서 유치장은 그마저도 쉽지 않다.
인권침해 문제 제기도 늘어나면서 피의자 관리에 골머리를 썩기도 한다. C경장은 “팔목에 감은 붕대 안에 흉기를 감춰 반입한 경우도 있었다”며 “금속탐지기에 이상 반응이 감지돼 검사하려 다가가니 아픈 척을 하면서 방해했다”고 전했다. 현재는 입감 전 신체검사도 인권 침해 문제로 예전보다 축소된 상황이다. C경장은 “예전에는 속옷부터 안경 등을 샅샅이 검사했으나 지금은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경찰이 수감자를 24시간 감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해 위험 피의자에 대한 물리적 결박 조치 후 그 이유를 설명하는 식의 매뉴얼이 필요하다”며 “피의자의 혐의(살인·폭행 등)나 자해 유형에 따라 경찰 대처가 달라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