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 김연경-펜싱 김지연, ‘맏언니’들의 빛나는 투혼

입력 2021-08-01 16:47
김연경(가운데)가 일본전 승리 뒤 선수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31일 일본 도쿄의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배구 A조 4차전 일본전 3대 2 승리의 일등공신은 박정아(28)였다. 박정아는 5세트 13-14 상황에서 듀스를 만드는 공격 득점에 성공했고, 일본의 범실로 매치포인트가 만들어진 상황에선 밀어넣기 득점을 올려 자신의 손으로 경기를 매듭지었다.

박정아가 가장 중요한 득점을 책임지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었던 건 ‘배구여제’ 김연경(33)이 경기 내내 앞장서서 팀원들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이날 김연경은 블로킹 3개 포함 총 30득점을 올리며 양 팀 통틀어 최다 득점을 기록했다. 고비 때마다 팀원들을 불러 모아 투쟁심을 불어 넣는 리더십을 보이기도 했다.

김연경은 지난 시즌 11년 만에 프로배구 V-리그에 전격 복귀했다. 연봉을 대폭 깎고서라도 마지막이 올림픽을 제대로 준비해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시즌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학교폭력 의혹이 불거지며 흥국생명과 대표팀의 주축인 이재영·이다영 자매가 무기한 출전 정지를 받아서다. 김연경은 팀의 유일한 에이스로서 챔피언결정전까지 쉬지 않고 경기를 뛰었다. 강행군은 계속됐다. 김연경은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와 올림픽까지 이탈리아-일본을 오가며 쉬지 않고 이어진 일정을, 올림픽 메달이란 목표를 위해 견뎌냈다.

그런 간절함은 이날 경기에서 투혼으로 발휘됐다. 김연경은 경기 도중 허벅지 핏줄이 터진 상태에서도 30득점을 올렸고, 수비에서도 몸을 내던지며 수차례 디그를 성공시켰다. FIVB에 따르면 김연경은 이날 올림픽에서 자신의 4번째 30득점을 올렸다.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가모바(3회)를 제치고 세계 최초의 기록을 세운 것이다.

세계의 찬사도 쏟아지고 있다. FIVB는 이날 홈페이지에 한국의 8강 진출 소식을 전하며 “김연경이 드라마틱한 승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일본 언론들도 앞다퉈 “김연경은 배구여제란 칭호에 걸맞은 활약을 펼쳤다”고 극찬했다.

김연경은 승리의 공을 독차지하지 않는다. 항상 팀이 먼저다. 그는 경기 후 승리 비결에 대해 “애들이 다들 열심히 한다. 다들 간절하다. 마지막 3연속 득점으로 이길 수 있었던 건 결국 팀워크였다. 원 팀이 됐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김지연(왼쪽)이 동메달을 따낸 뒤 팀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연합뉴스

팀을 하나로 묶는 ‘맏언니’ 리더십은 이날 펜싱 경기가 열린 일본 지바의 마쿠하리 메세에서도 빛을 발했다. 김연경과 동갑내기인 김지연(33)의 이야기다. 2012년 런던올림픽 개인전 금메달리스트인 김지연은 여자 사브르 최초의 단체전 메달을 위해 이번 올림픽에 나섰다. 지난해 2월 아킬레스건 완전파열이란 큰 부상을 입고도 눈물의 재활 과정을 견디며 재활에 성공하면서다.

여자 배구처럼, 이날 여자 사브르 동메달에 가장 중요한 포인트들을 올린 건 윤지수(28)였다. 그는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15-25로 뒤진 채 나선 6번째 경기에서 홀로 11점을 올리며 짜릿한 역전승의 발판을 놓았다. 그런데 윤지수가 자신이 가진 기량 이상을 선보일 수 있었던 건 맏언니이자 마지막 주자인 김지연의 존재 때문이다. 윤지수는 “솔직히 점수를 내자는 마음보다 지연 언니에게 스코어 37~38점만 (이어)줘도 저희가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지연은 그런 후배들의 믿음에 든든한 버팀목이 돼줬다. 고비 때마다 동생들을 다독이며 용기를 북돋아줬음은 물론, 체력이 고갈된 마지막 승부에서 기어코 이탈리아의 로셀라 그레고리오를 5-4로 물리치고 45-42 3점차 승리를 완성했다. 김지연은 “정말 간절했던 메달이다. 의미가 크다”며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도쿄·지바=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