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 후보자의 임명 여부를 놓고 오세훈 서울시장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부동산 4채 다주택자, 정책·비전 부족, 도덕성·자질 문제 등이 논란이 되면서 시의회가 부적격 경과보고서를 채택한데 이어 경실련 등 시민단체와 여야 대선 예비후보들까지 임명 철회를 요구하면서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김 후보자가 다주택에 대해 ‘시대적 특혜’라고 해명한 것에 대한 사과와 함께 남편 명의를 포함해 보유중인 부동산 4채 가운데 부산 아파트와 오피스텔을 이른 시일내 매각하겠다고 나섰으나 상황을 반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특히 강남 아파트는 놔두고 부산의 부동산만 매각하려는 것에 대해 ‘내로남불’ ‘꼼수’라는 지적까지 나오면서 사퇴 압박이 커지고 있다.
서울시는 30일 대책회의를 열어 김 후보자 자진 사퇴를 촉구하는 시의회 논평과 오 시장의 임명철회를 요구하는 성명 등을 검토하면서 임명 강행시 예상되는 파장 등을 논의했다. 오 시장은 참모들로부터 김 후보자에 대한 시의회 경과보고서 내용과 부정적인 여론을 살피면서 심사숙고하고 있다. 오 시장은 4.7 보궐선거에서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 여권의 ‘내로남불’로 인한 민심 이반으로 당선됐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김 후보자를 임명했을 경우 여론이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김 후보자 지명을 철회할 경우 시의회와의 힘겨루기에서 밀리는데다 자신의 부동산 정책 추진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의회 인사청문 경과보고서가 서울시로 전달돼온 이후 그 내용을 비롯해 김 후보자에 대한 다양한 여론을 가감없이 오 시장에게 전달했다”며 “특히 김 후보자가 다주택 해명에 대한 사과와 일부 부동산 매각 입장을 밝혔으니 그 부분에 대한 평가도 함께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김 후보자의 부산 아파트·오피스텔 매각 입장이 부정적인 여론을 반전시켜줄 것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주말동안 여론의 추이를 지켜본 뒤 8월 초에 김 후보자 임명 여부에 대한 서울시의 입장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의회 더불어민주당은 29일 논평을 통해 김 후보자의 즉각 자진사퇴를 요구했다. 오 시장에게 지명 철회와 새 인사 추천을 촉구했던 것보다 더욱 강경해진 입장이다. 김 후보자가 부동산 4채 중 2채를 매각하겠다고 밝힌 것을 두고는 ‘역대급 내로남불’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시의회 더불어민주당은 “김 후보자는 자유한국당 원내대변인 재직 시절 당시 관사에 거주하던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대출을 받아 상가건물을 매입했다는 사실을 두고 맹공을 퍼부었다. 이후 김 대변인이 매각 후 차액을 기부하겠다고 하자 ‘뻔뻔하다’ ‘민주당 종특’과 같은 원색적인 단어로 비난했다”고 김 후보자의 과거 발언을 소환했다. 이어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이었던 지난해에는 반포 아파트를 두고 청주 집을 팔겠다는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 대해서는 ‘이렇게 답답할 수가. 청주집보다는 반포집이 낫고, 반포집보다는 청와대가 낫다는 것이냐. 2주택일 때 싼 주택을 먼저 파는 것도 절세전략이긴 하다. 다 계획이 있으셨다. 깊은 뜻과 계획을 몰라주니 당황하셨겠다’고 비꼬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보유 부동산 중 2채를 매각하겠다는 김 후보자의 발언이 사안의 본질을 흐리고, 여론의 환기를 의도한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시의회 더불어민주당은 “인사청문특위의 ‘부적격’ 판단의 근본적 이유는 ‘공공주택 정책을 반대하고, 민간주도의 다주택 정책이 옳다는 후보자의 생각이 공공주택 공급을 통해 서민주거안정을 실현해야 하는 서울주택도시공사 사장의 역할에 배치된다는 점에서 임명을 반대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주택 보유는 김 후보자가 가진 수많은 흠결 중 하나일 뿐, 시대적 특혜라는 말로 부동산 투기를 옹호하는 그릇된 시장제일주의가 공기업 수장으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도 성명을 내고 “오 시장이 내정한 김 후보자는 주택을 4채나 보유한 다주택자이면서 건설업체들이 출연한 건설협회, 건설공제 출자로 설립된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서 20여 년을 재직하며 민간건설사들의 이익을 대변해온 인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자질과 도덕성, 주택정책의 철학과 가치관 등 모든 면에서 무주택 서울시민의 주거안정과 복지 향상을 위해 공공주택 건설·공급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SH공사 사장으로, 1000만 서울 시민의 주거안정을 책임져야 할 공기업 수장 적임자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대통령선거 경선에 나선 이재명 경기지사와 국민의힘 홍준표 의원도 임명 철회를 촉구했다. 홍 의원은 페이스북에 “서민주택 공급 책임자로 다주택자를 임명하는 것은 참으로 부적절한 인사권 행사”라며 “지난번에 문재인 정권 국토부장관 임명때도 3주택자라고 그 임명의 부당성을 지적한 일도 있었다는데 정작 본인은 4주택자였다면 그건 어이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오세훈 시장님이 (김후보자의 다주택 보유사실을) 알고 임명을 추진했을 리는 없지만 뒤늦게 그런 부적절한 사실이 밝혀졌다면 지명을 철회해야 한다”며 “기존 주택을 매각하겠다고 한다고 그 잘못이 해소되는 것이 아니다”고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김재중 선임기자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