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통신선 복원을 계기로 남북 대화가 재개될 것을 대비해 정부가 의제를 정리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새로운 의제를 발굴하기보다 기존의 합의에서 이행되지 않은 부분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고, 사안의 시급성을 감안해 코로나19 관련 지원과 식량난 타개 방안 등을 협력 안건에 추가할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 당국자는 29일 “2019년 이후 남북 대화가 진행되지 않으면서 2018년까지 여러 회담에서 양측이 합의한 것 중 실천되지 못한 게 많고, 협의가 진행되다 중단된 것도 많다”며 “남북이 합의한 사안이나 우선적으로 논의가 필요한 사안, 시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을 의제로 정리하고 협의해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관계부처와 논의를 거쳐 남측의 안건을 정리하는 동시에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화상회의 같은 대화채널을 북측과 새로 구축할 방침이다. 이후 대화채널에서 북측과 안건과 조율하는 작업을 거치고, 궁극적으로는 4차 남북 정상회담까지 단계를 밟아 나간다는 구상이다.
시급한 사안으로는 북한의 식량난과 코로나19 방역이 꼽힌다. 식량의 경우 우리 정부가 지원하는 것을 북한이 거부해왔기 때문에 세계식량기구(WFP)를 통해 쌀을 지원하는 방안이 고려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백신도 우리나라나 미국의 직접 지원보단 국제기구인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해 제공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철도나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재개 등 양 정상이 합의했던 경협도 의제로 오를 수 있다. 다만 경협은 대북제재와 연관돼 있어 한·미 간 논의 결과에 좌우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 재개에는 부정적이지만 남북 간 철도 협력은 크게 반대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사공동위원회 구성과 6·25 전사자 유해 공동발굴 등 9·19 군사합의 이행 조치, 화상 이산가족 상봉, 종전선언 및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조치 등도 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재발방지 차원에서의 우리 공무원 피살사건 논의 또한 안건으로 언급된다.
가장 큰 변수는 코로나19다. 대북소식통은 “가장 가까운 시기로 거론되는 9월 추석 전후의 화상 이산가족 상봉만 해도 각지에 흩어져있는 이산가족을 찾아내 이들을 한데 모으는 게 북한으로선 상당히 부담스러운 작업”이라고 지적했다. 문재인정부에서 이산가족 상봉은 2018년 8월 단 한 번밖에 이뤄지지 않았다.
통신선 복원의 후속 조치를 준비 중인 청와대는 30일 로마 바티칸에 입성하는 유흥식 대주교(교황청 성직자성 장관)가 프란치스코 교황 방북에 역할을 해줄 수 있길 기대하고 있다. 교황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 평화 메시지를 낸다면 남북뿐 아니라 북·미 관계 진전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유 대주교의 교황청 장관 취임으로 교황의 방북 가능성이 커졌다. 유 대주교가 바티칸 현지에서 역할을 할 것”이라며 “(교황) 방북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한반도 평화에 대한 교황청의 메시지가 나온다면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 비핵화로 가는 과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유 대주교는 지난 27일 박병석 국회의장을 만나 “교황께서 방북 의지가 확고하다. 한반도 평화로 가는 길을 열기 때문에 저도 최대한 할 수 있는 것은 하겠다”며 교황의 방북 의지를 강조했다.
김영선 손재호 박세환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