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 중 흉기 들고 여성 집 찾아간 男, 2심 무죄 이유

입력 2021-07-29 13:08

한밤중 흉기를 들고 여성이 사는 집 앞에 찾아가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았던 20대 남성이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초인종을 누르고 현관문을 두드린 사실 만으로는 죄를 묻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판사 최수환)는 특수주거침입 혐의로 기소된 A씨(23)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지난해 8월 서울 영등포구의 한 아파트에서 자정이 넘은 시각에 흉기를 들고 같은 동에 사는 여성 B씨의 집을 찾아가 초인종을 누르고 현관문을 두드렸다. B씨는 돌아가라고 했지만 A씨는 다시 문을 두드렸고, B씨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해 A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강간을 하려고 했다”고 진술했다가 검찰에서는 “강간보다는 교도소나 병원에 가려는 의도였다”고 말을 바꿨다. 조사 결과 A씨는 양극성정동장애 등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사건의 쟁점은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린 행위를 주거침입죄의 실행 착수로 볼 수 있는지 여부였다. A씨는 1심 재판 과정에서 “문 손잡이를 돌려본다거나 강제로 열기 위한 시도는 없었다”며 주거침입 행위에 실제로 착수한 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A씨가 강간할 목적으로 흉기를 소지한 채 현관문을 초인종을 누른데다 피해자가 돌아가라고 했음에도 재차 문을 두드렸기 때문에 A씨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문을 열어줬다면 피해자의 주거에 침입할 수도 있는 상황으로 보이므로 특수주거침입죄의 실행 착수가 넉넉히 인정된다”며 A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다만 A씨가 실제로 피해자의 집에 들어간 건 아니므로 특수주거침입미수죄를 적용했다.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초인종을 누르거나 현관문을 두드리는 것 외에 비밀번호를 누르거나 손잡이를 돌려보는 등 문을 열려는 시도를 전혀 하지 않았다”며 “주거침입의 실행을 착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주거침입죄의 실행 착수가 인정되려면 현실적 위험성을 포함하는 행위를 개시해야 하는데, A씨의 행동 만으로는 이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A씨의 진술이 검찰 조사에서 바뀐 점과 경찰에 순순히 체포된 점에 비춰봤을 때 주거침입의 고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범죄의사나 계획이 구체적이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