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이런 국가대표는 없었다. 이것은 경기인가, 축제인가.’
2020 도쿄올림픽에서 활약 중인 Z세대(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 사이 출생) 선수들이 국내 팬들에게 산뜻한 미소를 안기고 있다. 국가대표 선수의 진지하고 결연한 모습만 접하던 우리 국민에겐 Z세대 선수들의 자유분방하고 재기발랄한 태도가 새로울 수밖에 없다.
Z세대 선수들의 눈에 띄는 특징은 메달 획득이나 경기 결과에 연연하기보다 자신이 세운 목표 성취와 그 과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한국 수영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황선우(18·서울체고)다. 연일 남자 수영에서 한국신기록과 아시아신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황선우는 놀라운 성적뿐만 아니라 경기 후 거침없고 솔직한 모습으로 시선을 강탈하고 있다.
황선우는 지난 27일 자유형 결승에서 150m까지 1위를 유지하다가 마지막 50m에서 뒤처지며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경기 후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 등장한 황선우는 100m까지 48초78이었다는 소리를 듣자 “49초요? 정말 오버페이스였네”라고 되뇌며 “49초대에 턴한 것으로 만족하겠다”며 활짝 웃었다. 그는 150m까지 선두로 나가는 동안 “옆에 아무도 없어서 이게 뭐지 싶더라”라며 자신의 페이스 조절 실패도 수긍했다. 메달 좌절에 따른 실망이나 낙담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황선우는 28일 자유형 100m에서 아시아신기록을 쓰며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자유형 100m 올림픽 결승에 올랐다. 자유형 200m 경기가 언제 있었냐는 듯 놀라운 회복력을 선보였다.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정 자체를 즐기면서 자아를 실현하는데 가치를 두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평가하면서 “워낙 개인화되고 자신의 표현이 자연스러운 세대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유로운 행동이나 긍정적 표현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자신에 대한 애정과 자존감을 중시하는 Z세대는 타인의 평가보다 자신이 세운 목표나 능력 발휘에 주목하는 경향을 보인다.
황선우뿐만 아니라 Z세대 선수들은 자기표현에 능하고 개성을 드러내는 데 스스럼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선배 선수들에게 주눅 들지 않는 것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별다른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모습,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태도 등에서 잘 드러난다.
쩌렁쩌렁한 목소리의 ‘파이팅’으로 국민에게 눈도장을 찍은 양궁 종목의 김제덕(17)선수가 대표적이다. 김 선수는 26일 도쿄 유메노시마 양궁장에서 열린 준결승·결승 경기 내내 자신과 스물세 살 차이가 나는 오진혁(40)선수에게 “오진혁 파이팅” “오진혁 잘한다”를 외치는 등 감정 표현에 거리낌 없는 모습을 보였다. 김 선수를 지도한 황효진 코치는 지난 26일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김 선수가) 긴장감을 좀 풀려고 ‘파이팅’을 하겠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신유빈(17) 선수는 방역복 공항패션으로 화제가 됐다. 신 선수는 지난 22일 YTN과의 인터뷰에서 “탁구를 계속 쳐야 하기 때문에 안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방역복을 입은 이유를 설명했다. 누리꾼들 사이에선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당당한 모습이 인상적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이들은 자신의 취향을 밝히는 데도 거리낌 없다. 신 선수는 자신이 ‘아미(그룹 방탄소년단의 팬클럽)’라고 여러 차례 소개했다. 황선우 선수도 그룹 블랙핑크의 멤버 제니와 그룹 ITZY의 멤버 예지를 좋아한다고 했다.
Z세대 선수들이 이 같은 특성을 보이는 데 대해 김종길 덕성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들은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다. SNS 등에서 사람들은 더 개방적이다. 의사 표현이 자유롭고,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이고 개방적이고 자기노출적인 특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안명진 기자 amj@kmib.co.kr
윤정민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