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광주 학동 철거건물 붕괴 참사는 건설업계의 고질적 관행이 불러온 ‘인재’라는 사실이 경찰 수사로 확인됐다. 공동 수급계약을 맺고도 실제 공사에는 참여하지 않고 수익지분만 챙기는 소위 ‘지분 따먹기’가 버젓이 이뤄졌다.
하지만 원청업체인 현대산업개발과 재개발 주체인 재개발조합 등은 이를 직·간접적으로 알면서도 팔짱만 낀 채 수수방관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광주경찰청 수사본부는 28일 학동 재개발사업 정비 4구역 5층 건물 붕괴 참사에 대한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분석 결과를 토대로 붕괴 원인과 책임자 규명을 위한 2개월 가까운 수사내용을 브리핑했다.
경찰은 그동안 공사 관계자와 목격자 진술, 압수수색 자료 분석을 통해 확보한 증거와 5차례 현장검증을 공동 실시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를 토대로 구체적 붕괴 원인을 규명해왔다고 밝혔다.
수사결과 철거공사 원청업체 현대산업개발과 하도급 업체인 한솔·다원이엔씨 등은 불법 재하도급을 받은 백솔이 해체계획서를 무시하고 공사를 진행한다는 점을 알고도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는 등 안전관리 의무를 지키지 않은 사실이 확인됐다.
현대산업개발은 철거공정을 위한 채팅방에 하도급 업체를 초청하고 현장 장비등록 과정에서 재하도급 업체를 확인하고도 묵인한 정황이 포착됐다.
경찰은 이와 관련, 원청업체 현대산업개발이 불법 재하도급 사실을 인지하고도 이를 묵인한 것으로 판단하고 관할 행정관청에 건설산업기본법 위반 혐의사실을 통보했다고 밝혔다.
특히 경찰은 일반건물과 석면 철거공사로 나눠 진행된 계약체결 과정에서 불법적 금품수수는 물론 담합행위, 다단계식 불법 재하도급에 따른 비상식적 공사대금 산정이 이뤄져 붕괴 참사로 이어졌다고 강조했다.
공동 수급자로 계약을 체결했으나 실제 공사에는 전혀 참여하지 않고 수익만 챙기는 이른바 ‘지분 따먹기’가 무리한 철거공사 강행으로 이어졌고 붕괴 참사의 직접적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이에 따라 지난 22일 붕괴 참사가 일어난 학동4구역 HDC 현대산업개발 현장소장 서 모 씨 등 5명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은 무리한 철거와 부실한 감리·원청, 불법 하도급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후진국형 사고를 일으켰지만 소위 ‘지분 따먹기’에 대한 처벌 규정이 별도로 없다는 문제점이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건설업계의 관행적 지분 따먹기가 입찰방해와 불법하도급, 공사 단가 하락에 따른 부실공사가 대형 안전사고로 이어지고 있으나 형사처벌, 과징금, 입찰자격 제한 등 처벌 법규가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경찰 수사와 국과수 감정·분석 결과 인명사고를 낸 5층 건물은 적절한 구조 검토 없이 진행한 철거 과정에서 발생한 수평 하중에 의해 시내버스가 정차 중인 도로 쪽으로 무너진 것으로 드러났다.
일명 ‘횡하중(가로로 미는 힘)’에 취약한 철거건물에 지속적으로 ‘밑둥 파기’ 방식의 불법 철거를 하다가 임계점을 넘어 한쪽으로 넘어졌다는 것이다.
경찰은 건물 외벽 강도를 무시하고 철거를 진행하면서 하층부를 먼저 철거하고 건물 내부에 쌓은 성토체(흙더미)가 지하층으로 무너져 건물을 쓰러뜨리게 됐다고 밝혔다. 수평 하중에 취약한 ‘ㄷ자 형태’로 철거를 하면서 1층 바닥 하중이 크게 증가했는데도 지하 보강을 전혀 하지 않았다가 참사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먼지가 날리는 것을 막기 위한 과도한 ‘물뿌리기 작업’도 성토체의 무게를 크게 늘려 건물이 더 쉽게 무너지도록 하는 등 사고를 유발한 원인으로 분석됐다.
경찰은 지금까지 붕괴참사와 관련해 23명을 입건해 원청사인 현대산업개발 현장소장 서씨와 하도급을 받은 한솔과 다원이엔씨 현장소장, 현장에 투입된 불법 재하도급 백솔 대표(굴착기 기사), 감리자, 철거업체 선정 브로커 등 5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부정한 청탁을 받고 감리업체를 선정한 동구청 직원, 재하도급 금지규정을 위반한 하도급업체 대표, 원청업체 안전부장·공무부장 등 4명은 불구속 송치하기로 했다.
경찰이 파악한 불법벅 철거 하청 계약 구조는 일반 건축물의 경우 재개발조합→현대산업개발→한솔·다원이앤씨→백솔로 이어졌다. 석면 철거는 조합→다원이앤씨→백솔로 연결됐으며 나머지 지장물은 조합→한솔·다원이앤씨·거산건설로 드러났다.
이 같은 건설업계의 비뚤어진 관행 속에서 붕괴사고의 근본적 원인이 된 지분 따먹기는 물론 면허 대허, 공사 수주업체와 브로커 사이의 수억원대 금품 수수, 입찰 담함 등 불법 행위가 이뤄졌다.
안전불감증에 기반한 무리한 철거, 감리·원청·하도급 업체 등의 안전관리 소홀 등도 복합적으로 작용해 끔찍한 붕괴참사를 일으켰다.
경찰은 국토교통부 중앙건축물사고조사위원회 분석 결과보고서까지 충분히 검토해 책임자들의 최종 신병처리에 반영하기로 했다. 중간 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그동안 중점적으로 수사해온 붕괴원인·책임자 규명 분야를 일단락한 경찰은 재개발조합 비리와 정·관계 로비설 등 전반적 의혹규명에 향후 수사력을 집중할 방침이다.
지난달 9일 오후 광주 학동 4구역 재개발 철거 현장에서는 5층 건물이 인접도로 쪽으로 무너지면서 승강장에 정차 중인 시내버스를 덮쳐 9명이 숨지고, 8명이 크게 다쳤다.
수사본부 관계자는 “지난달 해외로 달아난 문모씨 등 13명에 대한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며 “앞으로 업체선정과 재개발 전반의 비리에 대한 수사도 한 점 의혹이 남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