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마스크 꺼낸 미국…“백신 미접종자에 대한 분노 커져”

입력 2021-07-28 06:40 수정 2021-07-28 07:33

미국 보건당국이 백신을 접종했더라도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큰 지역에 있으면 공공장소나 실내에서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지침을 개정했다. 백악관은 모든 연방직원에게 백신 의무접종 지시를 내리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델타 변이에 의한 ‘돌파 감염’ 사례가 나타나고 있고, 특정 지역에서는 예방 접종률이 크게 낮아 강력한 통제 정책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백악관은 CDC 발표 이후 곧 직원들에게 마스크 착용 지침을 내렸다.

정부의 방역 지침 강화가 계속되면서 미국 내에선 백신 접종자와 미접종자 간 갈등이 커질 우려도 제기됐다.

로셸 월렌스키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국장은 27일(현지시간) 브리핑을 갖고 “전염률이 심각하거나 높은 지역으로 판단되는 지역에서는 완전히 예방접종을 받은 사람도 공공장소나 실내에서 마스크를 착용할 것을 권장한다”고 말했다. 또 “가을 학기부터 예방 접종 상태에 상관없이 초·중·고교 모든 교사와 교직원, 학생, 학교 방문객에게 실내 마스크 착용을 권장한다”고 말했다.

월렌스키 국장은 “최근 며칠 동안 델타 변이는 기존 변이와 다른 행동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과학적 데이터를 봤다”며 “드물지만, 델타 변이는 예방 접종을 받은 사람에게도 바이러스를 퍼뜨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백신을 접종한 사람도 감염될 수 있고,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사람과 유사하게 바이러스를 대량으로 옮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CDC에 따르면 이날 현재 기준 미국 전체 카운티의 46%가 ‘높은 전염률’ 상태, 17%는 ‘상당한 전염률’ 상태에 있다. 지침 변경에 따른 마스크 착용 권고 대상 지역이 미국 전체 카운티의 3분의 2가량인 셈이다. 아칸소와 루이지애나는 모든 카운티가 높은 전염률 상태다. 미주리, 미시시피, 앨라배마의 거의 모든 카운티도 높은 전염률 상태로 백신 접종자의 실내 마스크 착용이 권고된다.

다만 CDC 마스크 지침은 권고 사항으로 도입 여부는 각 주와 지방정부가 결정한다. 월렌스키 국장은 “가볍게 내린 결정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으로부터 새 마스크 지침을 보고받았다.

CDC 지침 변경 후 백악관 직원들에게는 “백악관은 예방 접종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개인이 항상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요구한다. 실내에서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이메일이 도착했다. 해당 메일에는 “문이 닫힌 사무실에 혼자 있을 때, 먹거나 마실 때, 최소 2.4~3m 거리를 유지할 때만 마스크를 벗을 수 있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 지침은 28일부터 적용된다.

CDC 지침 변경은 지난 5월 백신 접종자에 대한 마스크 의무 해제 두 달 만에 나왔다. 특히 미국에서 마스크 의무 착용 지침 해지는 팬데믹로부터의 회복을 상징했었다. 그런데도 보건당국이 이 같은 조치를 내린 것은 델타 변이의 확산이 예상보다 심각하고, 반등 중인 경제 상황까지 다시 끌어내릴 수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됐다. 백신 접종률은 장기 정체 상태인데, 백신 접종자들에 대한 돌파 감염도 늘고 있다.

톰 프리든 전 CDC 국장은 CNN 방송과 인터뷰에서 “미국의 코로나 확산 추이가 영국과 비슷하다면 하루 최대 20만 건의 신규 확진 사례를 보게 될 것”이라며 “델타 변이 확산에 따라 코로나 사망자도 꾸준히 증가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뉴욕타임스는 “코로나19 감염 확산에 좌절한 많은 미국인이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들을 탓하고 있다”며 “정부의 마스크 권고 사항을 소홀히 하거나 음모론 같은 잘못된 정보에 집착하는 백신 미접종자에 대한 인내심을 잃고 있다”고 지적했다.

월렌스키 국장은 이날 회견에서 “대부분의 입원 환자와 사망자는 백신 미접종자”라며 백신의 효용성을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모든 연방정부 공무원들에 대한 코로나19 백신 접종 의무화 여부를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바이든 행정부 관계자는 “코로나19 예방접종을 받거나 그렇지 않으면 정기적인 검사를 받게 하도록 강제하는 뉴욕시 방식과 유사하다. 백신접종 거부 직원을 해고하는 건 고려하지 않지만, 이들에게 추가적 부담이나 제한을 가해 더 많은 사람이 접종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고 NYT에 말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