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 ‘전설’ 도미니카 베띠 “김연경은 대단한 선수”

입력 2021-07-28 06:00 수정 2021-07-28 06:00
도미니카공화국의 베띠가 한국 팬들을 향해 '브이(V)'를 들어 보였다. 도쿄=이동환 기자

“피유~(한숨), 네가 아는 게 내가 아는 거야.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대단한 선수라 생각해.”

그렇다. 27일 일본 도쿄의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브라질과의 경기가 끝난 직후 도미니카공화국의 라이트 베타니아 데 라 크루즈(34·미국 애슬리츠 언리미티드 프로리그)를 만난 기자는 “두 유 노우 K-썸씽?” 같은 질문을 던졌다.

베타니아가 2014-2015시즌 터키 엑자시바시에서 뛰던 당시 같은 리그 페네르바체 소속이던 김연경(33·중국 상하이)과 맞대결을 펼쳤고, 김연경이 현재 마지막 올림픽 도전을 이어가고 있기에 할 수밖에 없는 질문이었다(고 합리화 했다). 베타니아는 ‘김연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듣자마자 오른손을 좌우로 가로저으며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베타니아는 오는 29일 한국과 중대한 일정을 앞둔 도미니카공화국의 ‘한국통’이다. 그가 한국에서 프로배구 V-리그 여자부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라 할 만한 활약을 펼쳤기 때문이다. ‘데라크루즈’, ‘베띠’라는 등록명으로 두 번이나 GS칼텍스 유니폼을 입었던 그의 활약은 ‘전설’로 남았다.

처음 한국에 왔던 건 2008-2009시즌이다. 베타니아는 적응기가 필요 없는 실력으로 716득점(공격성공률 49.26%)을 올리며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2012-2013시즌 다시 GS칼텍스와 손을 잡은 베타니아는 한 단계 진화했다. 해당 시즌 팀을 바로 챔피언결정전 준우승으로 이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시즌, 그는 V-리그의 전설이 됐다. 챔프전서 3차전 50득점, 4차전 54득점, 5차전 55득점(공격점유율 68.39%)을 올리는 가공할 활약으로 팀에 우승컵을 안기곤 엑자시바시로 향했다.

베띠(오른쪽)가 V-리그에서 뛰던 시절 IBK기업은행과의 챔피언결정전 경기에서 박정아-김희진의 블로킹을 뚫고 공격을 성공시키고 있다. 한국배구연맹 제공

한국에서 좋은 기억을 갖고 있는 그에게, 올림픽 같은 큰 무대에서 한국과 경기를 치르게 된 소감을 물어봤다. 그는 “한국에서 뛰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한국을 잘 알고 있다. 내 생각엔 우리가 한국을 잘 아는 것만큼 한국도 우리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래서 힘든 게임이 될 거라 생각한다. 나도 더 열심히 뛰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다소 승부욕 넘치는(?) 대답을 했다.

한국은 세 대회 연속 8강 진출을 이루기 위해 도미니카공화국을 꼭 잡아야 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날 경기에서 도미니카공화국은 강호 브라질을 거의 이길 뻔했다. 풀세트 접전에서, 정말 간발의 차이로 패했다. 베타니아는 이날 브라질전에 대해 “솔직히 말해 정말로 어려운 게임이었다. 이길 뻔했기 때문에 속상하기도 하다”며 “그러나 경기를 치르며 우리 플레이가 더 좋아졌기 때문에, 그 점에선 만족한다”고 말했다.

브라질과 경기에서 아무리 잘했다고 해도 진 건 진 거다. 도미니카공화국은 연달아 강팀을 만나긴 했지만 현재 2연패를 당한 상황이다. 그에게 A조에서 누가 생존할 것 같냐고 물어봤다. 그는 “모든 팀들은 자기 팀이 올라갈 거라고 생각한다고 본다”며 “현재로선 다른 팀을 생각하기보단 우리 팀의 전략과 게임을 생각하는 데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웜업존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베타니아(가운데)의 모습. 도쿄=이동환 기자

어느덧 노장이 된 베타니아는 부동의 주전이 아니다. 이날도 대부분 웜업존을 달구다 짧은 시간 코트에 얼굴을 비췄다. 구겨진 표정의 베타니아는 자국 기자가 한 명도 없는 믹스트존에서 한 동양인 기자가 자신을 부르니 그냥 지나쳐 가려고 했다. 그런 그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건 “한국에 여전히 당신을 기억하는 팬들이 많다”는 외침이었다.

표정을 푼 베타니아는 인터뷰 말미에 “아직까지 기억해주시는 팬들에게 따뜻한 안부(warm regards)를 전하며,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는 코멘트를 남겼다.

라커룸으로 들어가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한 경기에서 55점 기록한거 기억하냐”고 묻자, 그는 뒤를 돌아보곤 씨익 웃으며 이런 말을 남겼다.

“맞아, 내가 55점 올렸어.”

도쿄=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