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 한기와 싸우다… 50도 차이 버텨야 하는 냉동창고

입력 2021-07-27 17:32
두터운 패딩으로 무장한 작업자가 지난 26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수산시장 지하 냉동창고에서 운반용 수레를 이용해 수산물을 옮기고 있다. 이 냉동창고의 내부 온도는 영하 17.8도로 연일 폭염이 이어지는 최근의 한낮 기온과 50도가량 차이가 난다. 전성필 기자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려도 이를 피하기는커녕 더위와 사투를 벌여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무더위보다 더 뜨거운 조리 현장에서 불과 싸우는 무료 급식 자원봉사자들의 땀은 노숙인의 허기를 채운다.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운영 중인 급식소가 줄면서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을 찾는 노숙인들이 늘자 불 앞에 서 있는 조리 시간도 덩달아 늘었다.

폭염이 한창인 가운데 추위와 사투를 벌이는 이들도 고되기는 마찬가지다. 한여름에도 패딩을 입고 영하의 냉동창고와 폭염을 오가는 수산물 냉동창고 노동자들에게 여름은 겨울보다 힘든 계절이다. 더울수록 냉동 보관으로 신선도를 유지하는 일 역시 더욱 중요해진다. 폭염 속에서도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이들은 “고된 환경이지만 일의 보람이 나를 버티게 한다”고 말했다.

여느 때처럼 숨을 들이마셨을 뿐인데 코와 목이 냉기로 얼어 붙는 듯했다. 낮 최고기온이 36도에 육박하던 지난 26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수산시장 지하 2층 냉동창고 앞은 숫자 ‘-17.8’이 선명했다. 냉동창고에 들어서자 순식간에 50도 넘게 내려간 온도 변화에 몸도 긴장한 듯 얼어붙었다.

좀 전까지 땀으로 끈적했던 팔은 한기로 뒤덮였고, 알 수 없는 통증까지 찾아왔다. 관자놀이가 지끈거리며 두통도 시작됐다. 그 순간 긴 소매 내의와 두꺼운 외투를 겹겹이 껴입고 패딩점퍼까지 챙겨 입은 작업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기자에게 꽂혔다. 반팔 차림의 기자는 누가 봐도 어울리지 않는 ‘외부인’이었다.

안전모까지 쓰고 호기롭게 안으로 들어갔지만 작업은커녕 서있기도 쉽지 않았다. 수산물 상자를 쌓는 보조 업무를 하려 했으나 손가락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다리도 무거워지며 온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반팔 차림으로는 더 버틸 자신이 없었다. 냉동창고에 들어오기 전만 해도 찜질방 같은 무더위를 피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채 10분도 버티지 못했다.

그 사이 냉동창고에서 만난 박경환(37)씨는 익숙한 듯 창고 안에 있던 지게차로 향했다. 그는 거침없이 차량을 직접 몰아 10m 높이의 선반 위로 이동했다. 수산물 상자들이 쌓여있는 팔레트(대형 화물운반대)를 옮기며 재고 관리에 속도를 냈다. 작업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박씨는 냉동창고 밖에서도 긴팔 차림이었다. 그는 “냉동창고 안이든 밖이든, 작업자들은 출근하면 한여름에도 늘 두꺼운 옷을 입고 지낸다”며 “온도 변화를 적게 느끼기 위한 자구책”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계절 내내 냉동창고 안에서 일하다 보면 계절을 잊어버리기 일쑤”라며 웃었다.

온도 변화를 적게 하려 해도 여름은 겨울보다 힘들다. 냉동창고 내·외부 온도 차가 겨울보다 여름이 심해 체력적으로 더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5년 동안 이곳에서 일한 베테랑 박씨도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날 냉동창고로 들어가면 갑작스러운 한기에 어지러움을 느껴 휘청일 때가 있다고 했다. 갑자기 바뀌는 온도 때문인지 감기도 직업병처럼 달고 다닌다.

박씨는 폭염과 혹한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지만 전국으로 신선한 수산물을 보급한다는 자부심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추위와 더위를 오가는 극한의 환경에서 일하고 있지만,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한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