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 대한 배임교사 혐의를 심의하게 될 검찰 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이 미뤄지고 있다. 김오수 검찰총장이 직권으로 수사심의위 소집을 결정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데도 대검찰청은 아무런 일정을 잡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김 총장이 일주일가량 여름휴가를 떠난 상황이라 이번 주에도 수사심의위 개최가 어려울 전망이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검은 이날까지도 백 전 장관에 대한 배임교사 혐의를 심의하는 위원들과 수사심의위 일정에 대한 구체적인 협의를 진행하지 않았다. 대검 관계자는 “최근 단행된 검찰 인사와 코로나19 상황 등의 이유로 일정을 검토 중인 단계”라고 말했다. 수사심위위가 소집되면 법조계, 학계 등 외부위원 150~250명 중 무작위로 선정된 15명 위원이 다수결로 기소 여부를 결정한다.
수사심의위 개최가 결정된 뒤 1개월 동안 소집이 이뤄지지 않은 전례는 찾기 어렵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의혹 사건 수사에 외압을 행사한 혐의를 받는 이성윤 서울고검장 사건의 경우 신청부터 소집까지 3주가량 소요됐다. 채널A 기자 강요미수 의혹 사건에서는 검찰시민위원회의 수사심의위 회부 결정 이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개최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건에서도 수사심의위 개최까지는 한 달이 걸리지 않았다.
대검 검찰개혁위원을 지낸 김한규 변호사는 “검찰 스스로 수사심의위를 장기간 방치하면 검찰 개혁의 상징인 제도 취지가 무색해져 존립 근거가 사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수사심의위는 외부 시민들의 판단을 거쳐 검찰 수사의 적절성을 통제하는 취지에서 도입됐는데 시간이 지연될 경우 수사팀의 수사 의지를 꺾는 수단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에서도 “한없이 늦출 수는 없고 할 것은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두기 단계 상향의 영향 등이 있다고 하지만 ‘검토 중’ 입장만 계속되는 것도 검찰로서는 부담이다. 백 전 장관 등에 대한 기소에 이르기까지 오랜 토론이 필요했던 상황에서 수사심의위마저 늦어지자 ‘대검이 백 전 장관이 대응할 시간을 벌어주고 있다’는 관측이 법조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백 전 장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기되 배임교사 혐의에 대해서는 시민사회의 판단을 받도록 한 결정은 대검 지휘부와 대전지검 수사팀 사이의 일종의 타협이었다.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에 대해 배임 혐의를 적용한 것은 월성 원전 1호기 사건을 대형 경제범죄로 보는 수사팀의 시각을 최대한 수용한 것으로 풀이됐다.
다만 배임교사는 수사 실무상으로도 빈번하게 적용돼온 죄명은 아니었다. 검찰이 백 전 장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을 때에도 배임 관련 혐의는 애초 빠졌다. 법조계에서는 “법원에서의 공소유지가 만만치 않을 텐데, 결과에 따라 무리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는 영역”이라는 말이 나왔다. 검찰 관계자는 “대검과 수사팀 간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구승은 기자 gugiz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