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상장을 앞둔 게임사 크래프톤이 위기의 인도 시장에서 진심 어린 투자 행보를 보이며 마침내 활로를 열었다. 불투명한 정세 속에서 ‘배틀그라운드(배그) 모바일’을 성공적으로 인도 시장에 안착시켜 서방, 중국 시장을 대체할 ‘캐시 카우(cash cow)’를 확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게임사는 인도에서의 연착륙을 발판 삼아 중동, 아프리카 등의 서녘으로 시장을 넓혀간다는 계획이다.
25일 업계와 앱 통계 등에 따르면 이날 기준 인도 ‘구글 플레이’ 앱 순위에서 배그 모바일은 인기 1위, 매출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 게임은 출시 후 단숨에 매출 최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가며 ‘1인칭 슈팅 게임(FPS)’의 강세가 두드러지는 인도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게이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매출 1위에 올라 있는 ‘가레나 프리 파이어’는 인기 순위에서 12위까지 밀려나있다. 현지 매체들은 “새 국민 게임이 등장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흥행은 예견된 일이었다. 인도 지역에서 새 출발한 배그 모바일은 사전 예약을 받은 지 2주 만에 2000만 명이 몰리며 높은 관심을 샀다. 출시 후엔 일주일 만에 누적 이용자 3400만명, 일일 최대 이용자 1600만명, 최고 동시 접속자 수 240만명을 기록하며 돌풍이 일었다.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열린 론칭 파티에는 50만명의 시청자가 몰리기도 했다.
통계 플랫폼 ‘statista’의 2021년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의 스마트폰 이용 인구는 4억4000만명, 그 중 모바일 게임 인구는 3억6000만명에 달한다. 한국과 비교하면 스마트폰 이용자 수가 11배 이상 많다. 현지 매체 ‘비즈니스 라인’은 연구 기관 ‘CLSA’의 통계를 인용하며 인도의 모바일게임 시장이 2023년까지 30억 달러에 이를 거라고 전망했다.
배그 모바일의 연착륙은 우여곡절 끝에 맺은 결실이다. 크래프톤은 배그 모바일의 글로벌 서비스를 중국 텐센트에 위탁해왔는데, 인도 정부가 안보상의 이유로 중국 앱을 차단하면서 배그 모바일 또한 인도 서비스가 요원해졌다. 그러자 크래프톤은 인도 지역에 한해 직접 서비스를 선언하고 인도 시장 공략에 시동을 걸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과감한 투자 행보다. 크래프톤는 지난해 11월부터 인도에 별도 지사를 설립한 뒤 1억 달러(약 1100억원)을 투자한다는 로드맵을 수립했다. 8개월여가 지난 지금까지 7000만 달러(약 802억원) 규모의 투자금을 현지 게임사, IT 업체, e스포츠 시장에 투입했다. 이와 별개로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은 인도 핀테크 플랫폼을 운영하는 국내 IT 업체에 200억원을 투자하기도 했다.
현지 e스포츠 활성화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다음 달 열리는 e스포츠 대회 ‘배그 모바일 인도 시리즈 2021’은 총상금 1000만 루피(약 1억5000만원)의 상금이 걸려있다. 인도 게이머라면 누구든 참가 가능하게 설계된 대회다. 크래프톤은 이 대회를 시작으로 각종 e스포츠 대회를 인도 지역에 정착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손현일 크래프톤 투자 본부장은 “인도에서 더 많은 기회를 발견한다면 앞으로도 과감히 투자할 의향이 있다”면서 “인도의 게임·e스포츠 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계획이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인도 시장에서 더 많은 기회를 기대하고 추가적인 자금을 배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배틀그라운드는 국내 게임 산업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대성한 게임이다. 이 같은 저력이 차츰 신흥 시장으로 뻗어나가는 모양새다. 크래프톤은 ‘해외에서 더 유명한’ 배틀그라운드 IP의 특징을 십분 살려 터키, 파키스탄을 거쳐 중동과 북아프리카까지 포트폴리오를 확장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손 본부장은 “혁신적이고 열정적인 창업자, 성장 가능성 있는 마켓 포지션, 전략적 협업 가능성을 가진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며 “인도를 시작으로 중동 등 인접 지역으로도 크래프톤의 사업 영역을 확장해 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