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구인이 재심 사유로 주장하지 않은 공소사실을 재판부가 직권으로 다시 심리해서 유죄 인정을 파기하면 안 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반공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A씨(86)의 재심 상고심에서 원심판결 중 반공법 위반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5일 밝혔다.
A씨는 군사정부 시절이던 1975년 11월 당시 교제하던 여성에게 “가장 친한 친구 중에 한승헌 변호사가 있는데, 당국에서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해 사회에서 매장하려고 한다”고 말한 혐의(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와 이듬해 1월 같은 여성에게 “공산주의 이론은 좋은 것이다” 등의 발언을 한 혐의(반공법 위반)로 기소됐다.
A씨는 1976년 11월 이 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1심은 A씨에 대한 혐의를 모두 인정해 징역 1년 6개월에 자격정지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2심은 A씨에게 징역 1년에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고 1977년 판결이 확정됐다. 그러나 2013년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에 대해 “국민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고, 검찰의 재심 청구는 2019년 2월에 받아들여졌다.
재심을 맡은 서울고법은 지난 2월 검찰이 재심을 신청한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 위반 외에 반공법 위반 혐의까지 심리해 두 혐의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재심 재판부는 “재심의 심판범위는 재심개시결정 당시 재심사유가 인정된 범죄사실뿐만 아니라, 재심법원의 심리과정에서 재심사유가 추가로 발견된 범죄사실에도 미친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청구인이 재심을 주장하지 않은 부분을 재심에서 다시 심리해 유죄 인정을 파기하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 청구인이 재심사유를 주장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양형을 위해 필요한 범위에 한해서만 심리를 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대법원은 “반공법 위반 부분을 다시 심리해 무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에는 재심의 심판 범위에 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며 원심의 반공법 위반 부분의 판단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했다.
박성영 기자 ps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