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주국 한국 태권도의 간판 이대훈(29)은 현란한 발기술을 가진 선수다. 이대훈의 발은 경기 내내 저돌적으로 상대의 몸통에 파고든다. 언제든 높게 솟구쳐 머리를 타격하기도 한다. 점수를 내기 위해 상대를 끌어안고 전자호구에 발만 가져다 대는 ‘재미없는 태권도’는 이대훈에게 통하지 않는 얘기. 이대훈은 공격적인 태권도, 재미있는 태권도를 추구한다.
이대훈은 생애 세 번째 올림픽에 출전한 25일 일본 지바 마쿠하리메세 A홀에서 첫 상대인 울르그벡 라시토프(19·우즈베키스탄)의 머리와 몸통을 시종일관 타격했다. 라시토프가 경기 중 두 차례나 “악” 소리를 낼 정도였다. 이대훈은 16-11로 앞선 2라운드 종료를 10초쯤 남기고 발로 라시토프의 배를 정면으로 차 쓰러뜨렸다. 18-15로 앞선 3라운드 종료 59초 전에는 발을 높게 들어 머리로 휘둘렀다. 그때마다 라시토프의 입에서 외마디 비명이 터졌다.
2라운드만 초반만 해도 12-3까지 앞섰던 이대훈의 승리가 확실해 보였다. 열 살이나 어린 라시토프는 젊은 패기로 이대훈에게 달려들었지만, 경험의 차이는 분명했다. 이대훈은 승기를 잡자 전자호구를 노려 차는 득점보다 발기술로 타격전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한참을 이대훈에게 두들겨 맞은 라시토프는 2라운드를 끝낼 때쯤 지쳐 있었다.
하지만 3라운드 시작과 함께 우즈베키스탄 코칭스태프가 판정을 이유로 시간을 끌었다. 한 경기마다 2분씩 모두 3라운드를 진행해 6분의 정규시간이 편성되는 올림픽 태권도에서 우즈베키스탄 판정시비로 3분 이상이 소요됐다. 라시토프는 그 결과로 체력을 회복했고, 이대훈을 2~3점차 간격으로 좁혀왔다.
결국 마지막 3라운드 종료를 22초 앞두고 라시토프는 극적인 머리 공격에 성공해 3점을 뽑아 19-18로 승부를 뒤집었다. 이대훈은 종료 11초를 남기고 라시토프의 감점을 끌어내 19-19로 맞선 채 승부를 ‘골든라운드’(연장전)로 끌고 갔지만, 17초 만에 몸통으로 발 공격을 허용해 19대 21로 졌다.
그렇게 도쿄올림픽 남자 68㎏ 이하급 16강에서 이대훈은 무릎을 꿇었다. 이제 라시토프가 결승으로 진출해야 이대훈은 패자부활전을 통한 동메달 결정전 진출을 노릴 수 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목에 걸지 못한 올림픽 금메달은 이번에도 무산됐다. 이대훈의 앞선 올림픽 성적은 2012년 영국 런던 대회 58㎏ 이하급 은메달, 201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대회 68㎏ 이하급 동메달이 전부다.
이대훈은 경기를 마친 뒤 장외에서 지나간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점수 차이가 벌어졌을 때 시원하게, 해보고 싶은 대로 경기를 펼쳤다. 경기를 끝낼 때 역전을 허용한 뒤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며 “조급한 마음도 있었디”고 자신의 패인을 지목했다. 결국 득점보다 재미를 추구했던 플레이 스타일에 이번에도 발목을 잡힌 셈이다. 이대훈은 라시토프의 결승 진출 소식을 기다리며 패자부활전을 준비하게 된다.
지바=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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