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사람들에게 마이크로칩을 심으려고 코로나19 백신을 이용하고 있다.’ 미국인 5명 중 1명(20%)은 이 황당한 음모론을 진실이라 믿고 있다.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허위정보도 미국인 18%는 사실로 본다. 유고브가 지난 10~13일(현지시간) 성인 15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여론조사 결과다.
음모론을 신뢰하는 이들 사이에는 몇 가지 유사성이 존재했다. 응답자 성향을 분석해 보면 백신 접종 거부, 2020년 대선 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 보수 성향 등의 키워드가 나타난다. 지난해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한 응답자 중 29%, 공화당원의 32%, 보수주의자 중 30%가 마이크로칩 음모론을 사실로 본다고 답하는 식이다. ‘자신은 백신을 접종할 의사가 없다’고 한 응답자 절반은 마이크로칩 음모론이나 자폐증 유발 음모론이 사실이라고 답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협은 정치적인 이유로 과장됐다’는 항목에 미국 성인 40%가 ‘그렇다’(매우 그렇다 21%, 대체로 그렇다 19%)고 답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76%), 공화당원(70%), 보수주의자(72%)라는 공통점이 이들 응답자 성향으로 나타났다.
백신을 접종하지 않겠다고 한 응답자 85%는 코로나19 위협 과장론을 신봉하고 있었다. 과학의 영역인 백신 접종에 음모론을 무기 삼은 정치가 끼어든 것이다.
“미신과 싸우는 과학”
플로리다주 케이프 코럴 지역에 사는 조셉 머콜라(67) 박사는 백신 음모론 확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이다. 비영리 단체 ‘디지털 증오 대응센터(CCDH)’는 올봄 백신 음모론을 퍼뜨린 주범 12명을 꼽으며 머콜라 박사를 1위 위험인물로 지목했다. 그는 국내에서도 자연치유 전문가로 소개된 인물이다.머콜라 박사는 그간 “백신 강요는 세계 경제 시스템을 리셋하기 위한 계획의 일부”라거나 “과산화수소 치료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포함한 대부분의 호흡기성 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는 잘못된 주장을 퍼뜨려 왔다. 그의 글은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를 타고 수백만명에게 전파됐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이런 음모론 등 허위정보가 백신 접종률 정체의 원흉으로 판단하고 있다. 실제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지난 23일 현재 미국 전체 인구대비 접종 완료율은 48.9%에 그치고 있다. 지난 6월 1일 40.6%에서 54일간 8.3% 포인트 증가하는 데 그쳤다. 7월에는 겨우 2.2% 포인트 올랐다. 미국 전체에서 하루 평균 50만 건 접종을 채우지 못하는 날도 잦다.
동시에 신규 확진자는 급증세다. 미 존스홉킨스대학 집계에 따르면 지난 23일 신규 확진자가 11만8791명으로 나타났다. 뉴욕타임스(NYT)가 집계 중인 최근 일주일 기준 하루평균 신규 확진자 수는 연일 4만~5만명 수준을 기록 중이다. 지난 5월 30일 신규 확진자가 6700명대까지 떨어졌던 것과 비교하면 극적인 변화다.
이번 확산은 백신 접종률이 낮은 지역을 중심으로 특히 빠르게 퍼지고 있다. 인구 10만명당 신규 확진자 발생률은 지난 23일 현재 미국 전체가 15명 수준(최근 일주일 하루평균 기준)이다. 그런데 루이지애나는 10만명당 발생률이 52명이다. 루이지애나 백신 접종률은 36%에 그치고 있다. 플로리다(49명), 아칸소(46명), 미주리(37명), 미시시피(31명), 네바다(28명) 등도 신규 확진이 크게 늘고 있는 지역인데 모두 미국 전체 평균보다 접종률이 낮다.
인구 10만명 당 신규 확진자 발생률이 높은 상위 10개 지역은 백신 접종 완료율이 39%에 그친다. 미국 전체 평균보다 10% 포인트 가량 적다. 접종률이 30%대에 그친 지역이 상위 10곳의 절반이다. 음모론 등 허위 정보에 의한 백신 접종 거부가 확진자 증가와 영향이 있다고 조 바이든 행정부가 판단하는 이유다.
델타 변이로 중증 환자 급증
이번 재확산 주범은 지배종으로 등극한 델타 변이다. 신규 확진자 83%가 델타 변이에 의한 감염 사례로 나타났다. 백신이 델타 변이를 막아 내는 데 얼마나 효과적인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중증 환자 발생이나 사망률을 낮추는 데는 매우 효과적이라는 게 주요 백신 접종 국가들의 사례로 확인되고 있다.
그런데 NYT는 아칸소, 플로리다,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미주리, 네바다 등 비교적 예방 접종률이 낮은 일부 지역에서 입원 환자가 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플로리다 병원 협회(Florida Hospital Association)에 따르면 현재 약 5300명의 주민이 코로나19 감염으로 입원한 상태다. 이는 전주보다 65%나 급증한 수치다. 지난달 14일 1845명보다 세 배 많다. 플로리다 당국은 입원 환자의 95% 이상이 예방 접종을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플로리다주에서는 지난주에만 7만3000명의 신규 확진자가 나왔는데, 이는 한 달 전보다 7배 많은 수치라고 AP가 보도했다.
미주리주 스프링필드의 머시 병원 관계자는 “올여름 환자 급증이 지난해 가을보다 거의 5배 빠르다”고 말했다. 이 병원에선 한 달 만에 코로나 환자수가 26명에서 115명으로 늘어 한때 인공호흡기 부족 사태까지 겪었다고 한다. 현재 머시 병원에는 155명의 환자가 있는데, 8월 초에는 200명 이상의 환자가 입원할 것으로 전망됐다.
재러드 모스코위츠 전 플로리다 비상관리국장은 “이 일(백신 접종)은 전국적으로 정치화됐고, 우리는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지금은 백신 접종을 하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의 대유행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4차 재확산은 바이든 행정부의 발목까지 잡고 있다. 갤럽이 지난 6~21일 성인 100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은 50%로,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전달 조사 때보다 6% 포인트나 하락했다.
갤럽은 코로나19 신규 확진자의 증가, 백신 접종률 둔화, 인플레이션에 대한 두려움이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갤럽은 “바이든의 지지율이 의미 있는 하락의 첫 징후를 보이고 있다”며 “낮은 지지율이 지속한다면 허니문 기간이 끝났다는 신호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델타 변이의 급증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정치적 위험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