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당내 윤석열 전 검찰총장 지지 의원들의 갈등이 지난 23일 공개적으로 표출됐다. 이 대표가 윤 전 총장의 초반 정치 행보가 미숙하다고 지적하면서 입당을 압박하자 친윤계가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를 보호해야 한다며 비판했다. 이에 대해 이 대표도 “선을 넘었다”고 맞서면서 내분이 고조됐다.
당내 반발이 불거진 것은 지난 22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최근 하락세인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이 “위험하다”고 평가한 게 계기가 됐다. 그는 “과거 안철수 대표가 정치에 미숙했을 때와 비슷한 판단을 한다”며 “서울시장 선거에서 모두가 배웠어야 하는 교훈을 당이 중심을 잃고 흔들리지 않으면 어떤 선거도 이길 수 없다는 것. 흔들림 없이 가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또 “윤 총장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거나 꽃가마를 태우지 않겠다”면서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당 밖의 인사를 밀기 위해 오세훈 시장과의 개인적인 인연도 다 버리고 압박하다가 나중에 단일 후보가 확정된 뒤에는 유세차에 올라 오려고 하셨던 분들, 이긴 선거였기 때문에 당원들과 국민이 웃고 지나간 것이지 결코 잊지 않았다”고 했다.
이같은 발언에 당 중진이자 윤 전 총장에게 우호적인 의원들이 잇따라 반발했다. 윤 전 총장과 친구인 권성동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석열의 지지율을 위험하다고 평하는 것은 정치평론가나 여당의 인사가 할 말이지 제1야당의 당대표가 공개적으로 할 말은 아니다”라며 이 대표를 비판했다. 권 의원은 또 “서울시장 선거와 대선은 같지 않다. 대선은 지면 모든 것을 잃는 선거”라고 했다.
5선인 정진석 의원도 “윤석열이 있어서 그나마 국민이 정권교체의 희망을 갖고 국민의힘이 그나마 미래를 꿈꾸는 정당의 몰골을 갖추게 됐다”며 4·7보궐선거 승리 요인도 윤 전 총장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 의원은 “지지율 30%의 윤 전 총장을 그저 비빔밥의 당근으로 폄하한다”며 “당내주자에 대해서만 지지 운동할 수 있다는 등 쓸데없는 압박을 윤 전 총장에게 행사해선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장제원 의원도 페이스북을 통해 “자해정치”라며 “이 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자니, 여당 측 평론가 발언으로 착각할 지경”이라고 비난했다. “야권 대선 후보 1위 후보를 보호하지는 못할망정 이런 식으로 비판해서 도대체 자신이 얻는 것이 아니라 그의 가치마저 끌어내리는 발언”이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의 발언들이 점점 적을 이롭게 하는 이적행위에 가까운 수위로 치닫고 있다”이라고 한 장 의원은 “당의 최고 중진들이 그토록 말조심을 당부했건만 소귀에 경을 읽는 것인가?”이라는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또한 “점점 ‘이준석 리스크’가 현실화하는 것 같아 무척 우려스럽다”라며 “이 대표는 더 이상 야권 주자의 가치를 떨어뜨려 자신의 가치만 높이려는 자기 정치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이같은 공세에 이 대표도 맞섰다. 그는 23일 오전 당 최고위원회 긴급간담회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일희일비하면서 간극 벌리려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고 작심하고 비판했다.
이어 “어떻게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당원과 국민이 오세훈 시장 중심으로 똘똘 뭉쳐 이뤄낸 승리를 윤 전 총장에 의해 이뤄낸 승리라고 하나?”라며 “선거의 교훈이라면, 당내 훌륭한 분들을 후보 만들어서 공정한 룰에 의한 단일화에 임해서 선거를 치르면 이길 수 있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선거 때 보면 지지율 추이나 여러 사정에 따라서 안(철수) 후보라는 당외 후보에게, 표현이 과격할지 모르겠지만, 부화뇌동한 분들도 있었다”고 한 이 대표는 “그분들이 옳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너무 선을 넘었다. 정중동 자세로 가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다소 표현이 셀 수 있지만 이 부분은 당원의 명예가 걸린 부분이라 흔들림 없이 공정한 경선을 이어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힌다”고 했다.
당내 일부 대권주자들은 이 대표 엄호에 나섰다. 홍준표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당원과 국민의 뜻으로 선출된 대표를 분별없이 흔드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라고 친윤계 중진들을 직격했다.
유승민 전 의원도 MBC ‘뉴스외전’ 인터뷰에서 “전 국민 재난지원금 외에 나머지는 이 대표가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 중진들이 (반발하는) 그럴 일이 별로 없지 않나 생각한다”고 이 대표를 옹호했다. 유 전 의원은 이 대표와의 특수관계 때문에 대선에서 유리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는 “오히려 역차별을 받을까 걱정”이라며 “제발 공정하게 해달라”고 말했다. 이 대표와 친윤계 의원들이 공개적으로 각자의 입장을 표출하면서 양측 신경전이 내홍 양상으로 분출되는 모양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