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윤 일병 사건’ 주범 유족에 4억 배상하라”

입력 2021-07-22 18:35

2014년 군 부대 내에서의 가혹행위와 무차별 폭행으로 인해 숨진 ‘윤 일병 사건’의 유족들이 가해자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소했다. 다만 유족들이 함께 낸 국가 대상 손배해상 청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3부(부장판사 정철민)는 22일 윤 일병의 유족 4명이 국가와 주범 이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주범 이씨가 윤 일병의 유족 4명에게 총 4억1000만여원을 지급하라”고 판단했다.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부분은 기각됐다.

앞서 윤 일병은 2014년 3월 병장이었던 이씨를 비롯해 병장 하모씨, 상병 이모씨, 상병 지모씨에게 가혹행위를 당하고 마대자루와 주먹 등으로 수십 차례 집단 폭행을 당한 끝에 같은 해 4월 숨을 거뒀다. 이씨는 윤 일병이 병원으로 후송되자 가해정황이 드러날 것을 우려해 피해사실이 적힌 수첩을 버리는 등 증거를 인멸하려고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건으로 군 검찰은 병장 이씨 등 4명을 재판에 넘겼다. 수 차례의 공판을 거쳐 결국 이씨에게는 징역 40년형이 확정됐고. 병장 하씨와 상병 이씨, 상병 지씨에게 각 징역 7년, 하사 유씨에게 징역 5년이 선고됐다. 형사 판결이 확정된 후 윤 일병의 유족들은 국가와 주범 이씨 등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유족들의 주장이 충분하지 못하고 증거도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원고들이 주장하는 사정과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헌병대 수사관들의 수사가 현저하게 불합리하거나 경험칙이나 논리칙상 도저히 합리성을 긍정할 수 없을 정도의 부실 수사가 이뤄졌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대한민국이 주의 의무를 위반하고 위법성이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판결이 나온 뒤 윤 일병의 어머니 안미자씨는 군 당국을 강하게 비판하며 재판 결과가 부당하다고 비판했다. 주범 이씨가 형사 처벌을 받았지만 사건을 조작하고 은폐한 군 당국은 책임을 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안씨는 “군사재판이 엉터리여서 민사재판에 걸었다. 조금이나마 기대를 걸었는데 역시나 마찬가지였다”며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수사가 완벽했다고 하는 군의 사법제도는 새롭게 바뀌어야 한다”고 끝까지 싸우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어 “자식을 잃은 분노가 너무 커서 삶을 놓고 싶을 때도 많았다”고 말했다.

박성영 기자 ps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