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경기 지역 배달대행업체 대부분이 배달기사들과 배달료 미기재, 일방적 수수료 변경, 불합리한 배상책임 규정, 일방적 계약 해지 등 불공정한 계약을 맺어온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일부 업체들은 당국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불공정한 계약조항 수정이나 표준계약서 채택을 거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시는 공정거래위원회, 국토부, 경기도, 한국공정거래조정원과 함께 지난 4월~7월까지 서울‧경기 지역에 등록된 배달기사 50인 이상 ‘지역 배달대행업체’ 163개(서울 64개, 경기 99개)를 대상으로 배달대행업체-배달기사 간 계약 실태를 점검한 결과 불공정한 내용이 다수 확인됐다고 22일 밝혔다. 배달료 미기재, 일방적 수수료 변경, 불합리한 배상책임 규정, 계약해지 후 경업금지(경쟁업종 창업금지) 의무 부과, 배달기사의 멀티호밍(여러 업체와 계약) 차단, 일방적 계약 해지 등 여러가지 문제점이 드러났다.
이번 점검은 ‘분리형 배달대행앱’ 3개사(로지올, 바로고, 메쉬코리아 등)와 협조해 ‘지역배달업체’를 대상으로 진행되었으며 서울시와 경기도가 지역 배달업체로부터 계약서를 제출받아 1차 확인하고 공정위가 최종적으로 불공정 항목 포함 여부를 점검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배달대행은 주문앱(우아한청년들, 딜리버리히어로 코리아, 쿠팡 등)과 직접 계약한 기사가 배달하는 ‘통합형’과 음식점이 배달대행앱(로지올, 바로고, 메쉬코리아 등)에 픽업을 요청하면 다시 지역 배달대행업체로 배달업무를 지시하는 ‘분리형’으로 나뉜다.
이번 점검 결과를 토대로 폐업 및 주소불명 업체(22개)를 제외한 총 141개 중 124개 업체가 계약서에 포함된 불공정 항목을 수정하거나 표준계약서를 채택하기로 합의했다. 이로써 권리를 보호받게 된 배달기사는 약 1만 2000명에 달한다. ‘표준계약서’는 지난해 10월 배달업계·노동계 등 민간이 주도하고 관계부처가 지원한 사회적 대화기구의 논의를 통해 마련된 것이다. 불공정거래행위금지, 차별 금지, 산재보험 가입 등 배달기사 권익 보호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서울시는 코로나19 장기화와 소비트렌드 변화로 배달기사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배달기사의 권익을 보호하고 업체와 배달기사 간 불공정한 계약 관행을 개선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이번 점검을 실시했다고 설명했다. 불공정조항이 발견된 111개(서울 31개, 경기 80개) 업체는 ‘표준계약서’를 채택하기로 했고 13개 업체(모두 서울)는 사용중인 계약서 내 불공정조항을 고치기로 했다. 하지만 17개 업체는 표준계약서 채택과 자율시정을 모두 거부했다. 시는 이들 업체에 대한 신고가 접수되면 더욱 면밀하게 조사할 계획이다.
지난 2019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배달노동자 권익보호를 위한 정부합동 태스크포스(TF)팀이 만들어졌고, 올해 1월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이 제정돼 오는 27일부터 시행된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역 배달대행업체에 배달기사들과 표준계약서를 사용하도록 권고할 수 있지만 강제할 수는 없다.
서울시·경기도 등 관련 기관들은 이번 점검결과를 바탕으로 배달기사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지속적인 관리‧감독을 할 계획이다. 또 업체들이 표준계약서를 채택하는지, 불공정조항을 시정하는지 등도 계속 확인하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현행법상 지자체는 지역 배달업체 실태를 조사할 권한이 없다. 법을 개정해 공정거래위가 권한을 지자체로 이양하거나 지자체의 조사권한을 신설하는 방법밖에 없다. 현재 국회에는 온라인 플랫폼사업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 등이 제출돼 있다.
이번 실태조사 결과 불공정한 계약내용이 확인됐으나 해당 조항 수정이나 표준계약서 채택을 거부한 업체에 대해서도 배달기사가 신고를 해야 공정위가 불공정거래 여부를 심사해 시정명령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을’의 입장에 있는 배달기사가 배달업체를 신고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오는 27일부터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이 시행되더라도 지역 배달업체가 표준계약서를 채택하지 않더라도 이를 강제할 방법이 없다. 표준계약서 채택은 권고사항이기 때문이다. 다만 국토부는 표준계약서 사용 확산을 위해 소화물배송대행업 인증제 시행 시 표준계약서 사용 여부를 인증기준에 포함시킬 예정이다.
박희원 서울시 공정경제정책팀장은 “프랜차이즈 본사와 가맹점간 불공정한 계약을 개선하기 위해 2019년 중앙정부가 가맹점 분쟁조정 권한을 지자체로 넘겼듯이 지역 배달대행업체의 불공정한 계약을 막기 위해 현장조사권과 처분권한을 공정위와 지자체가 공동 이행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중 선임기자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