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OK, 한국 NO”… 도시락 공수에 日 ‘선택적 분노’

입력 2021-07-22 11:29 수정 2021-07-22 13:58
대한체육회의 급식지원센터가 20일 태극전사들에게 전달한 점심 도시락. 연합뉴스

한국 선수단을 위해 국내산 도시락을 제공하는 ‘도시락 공수’에 대해 날 선 반응을 보였던 일본이 미국의 도시락에 대해서는 사뭇 다른 반응이다.

대한체육회는 지난 18일 도쿄올림픽 선수촌 인근의 한 호텔을 빌려 별도의 식사를 만들어 20일부터 선수단에 도시락을 제공했다. 도쿄올림픽 선수촌에서 후쿠시마산 식자재를 사용한 식사를 제공한다고 밝혀 방사능 오염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후쿠시마산 안 먹는다”…한국 선수단에 트집
한국의 '도시락 공수'와 관련해 단독 보도를 한 요미우리 신문. 요미우리 신문 홈페이지 캡처

이를 바라보는 일본 내 여론은 심상치 않았다. 앞서 17일 일본 요미우리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집권 자민당의 사토 마사히사 외교부 회장은 “음식 대접에 마음으로 노력하고 상당한 신경을 쓰고 있다”면서 “(한국의 도시락 공수는) 후쿠시마 현민의 마음을 짓밟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또 현지 매체 보도에 따르면 마루카와 다마요 올림픽담당상은 20일 국무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원전 폭발 피해 지역의 식재료는 관계 법령에 근거해 안전성이 확보돼 있어 방사성 물질 오염을 이유로 자국 농산물을 반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일본 도쿄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선수단을 지원하는 대한체육회의 현지 급식지원센터에서 20일 조리사들이 음식을 도시락 용기에 담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일본의 SNS는 뜨겁게 달궈졌다. 물론 일각에서는 일본도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선수단을 위한 별도의 식당을 선수촌 부근에 설치한 점을 들어 이번 비판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목소리도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대다수 일본 누리꾼들은 “이럴 거면 일본에 오지 말지 그랬냐” “한국산 식재료의 질이 더 떨어진다” “한국이 일본 농부들에게 상처를 줬다” 등의 비난을 쏟아냈다.

한국 이어 미국도 ‘도시락 공수’…난처해진 일본
21일 USA투데이는 미국 올림픽위원회도 자국 선수단에 제공할 7000끼 식사분을 직접 제공하기로 하고, 32.7t에 이르는 음식과 음료를 공수했다는 사실을 전했다. USA투데이 홈페이지 캡처

미국 USA투데이는 21일 “미국올림픽위원회가 7만2000파운드(약 32.7t)에 이르는 음식과 음료를 마련해 도쿄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단에 7000끼를 제공한다”고 전했다.

미국올림픽위원회는 대회 시작에 앞서 콜로라도주에서 도쿄로 음식과 음료를 공수해왔다. 미국은 일본 세타가야시 오구라 스포츠 파크에 급식 지원센터를 마련하고 대회 기간 7000끼가량을 만들어 제공할 방침이다.

미국의 도시락 공수 사실과 관련해 한국 보도를 인용한 야후 재팬. 야후 재팬 홈페이지 캡처

해당 사실은 21일 오후 야후재팬의 한국 보도를 인용한 기사를 통해 일본 현지에 알려졌다. 이 기사에 달린 일본 누리꾼들 대부분은 “미국의 공수는 이해가 간다” 식의 반응이다.

“미국의 공수와 한국의 공수는 전혀 달라”
야후 재팬 기사에 달린 누리꾼들의 댓글. 야후 재팬 홈페이지 갈무리

이들의 공통된 주장은 ‘미국과 한국의 배경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누리꾼들은 “미국은 선수들의 기호와 입맛에 맞춘 음식으로 선수의 영양과 건강 관리를 하는 것이면 한국은 아무런 논리적 배경 없이 일본을 괴롭히려고 후쿠시마 식품을 먹기 싫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야후 재팬 기사에 달린 누리꾼들의 댓글. 야후 재팬 홈페이지 갈무리

미국의 도시락 공수는 선수들의 식문화와 알레르기 등의 대응을 위한 것이고, 한국은 단순히 일본에 대한 감정에서 비롯된 행위임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야후 재팬 기사에 달린 누리꾼들의 댓글. 야후 재팬 홈페이지 갈무리

심지어 한 누리꾼은 최근 강원도 춘천시에서 발생한 ‘수돗물 사태’를 언급하며 “푸른 수돗물이 쏟아지는 나라의 식재료를 일본에 수입하는 건 말이 되는가”라며 “선수촌에서 냉큼 나갔으면 좋겠다”라고 수위 높은 비난을 던지기도 했다.

일본의 한국을 향한 ‘선택적 분노’는 국내 누리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22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미국 도시락 공수를 감싸는 일본의 반응이 알려지며 “졸렬하다”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누리꾼들은 “미국이 한국보다 후쿠시마 수입 규제에 깐깐한 곳인 거 모르냐” “후쿠시마 수산물 거의 전 세계 수입 금지인데 다른 나라한테는 말도 못하면서 또 우리나라 머리채만 잡는다” “우리가 뭘 했어도 늘 그렇듯 한국만 패는 건 변치 않는 사실이다”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주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