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점령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제품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한 미국 유명 아이스크림 업체 ‘벤 앤 제리스’가 이스라엘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했다. 2018년 이스라엘 정착촌에서 영업 중단을 발표했다가 이스라엘의 보복으로 해당 방침을 철회했던 에어비앤비 사태가 되풀이될지 주목된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 등 현지 매체는 20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정치권이 전날 요르단강 서안 정착촌에서 판매 중단 결정을 내린 벤 앤 제리스를 비판하고 있으며, 길라드 에르단 미 주재 이스라엘 대사는 벤 앤 제리스의 제재를 촉구하는 서한을 미 35개 주 주지사들에게 보냈다고 보도했다.
전날 벤 앤 제리스는 성명을 통해 “우리는 벤 앤 제리스 아이스크림이 팔레스타인 점령 지역에서 판매되는 것이 우리의 가치관과 모순된다고 믿는다”며 판매 중단 계획을 발표했다. 내년 12월 종료되는 이스라엘 지점과의 아이스크림 제조 라이센스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벤 앤 제리스는 그간 ‘기업의 힘을 사회·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데 쓴다’는 기조 아래 군비경쟁, 빈부격차, 인종차별, 성차별 등에 대해 사회적 목소리를 내왔다.
이에 이스라엘은 발칵 뒤집혔다. 나프탈리 베네트 총리부터 베냐민 네타냐후 전 총리까지 여야를 가리지 않고 벤 앤 제리스 때리기에 나섰다. 베네트 총리는 “벤 앤 제리스는 스스로를 반이스라엘 아이스크림으로 낙인찍기로 결정했다”며 “이것은 도덕적 실수이자 사업상 실수이기도 하다”고 비판했다.
에르단 대사는 미국에 “벤 앤 제리스의 결정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고 상업적 거래와 관련한 주 법에 의거해 조치를 취할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반 BDS법을 적용하라는 것이다.
‘반 BDS법’은 보이콧(Boycott) 투자철회(Divestment) 제재(Sanctions)를 통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에 저항하는 ‘BDS운동’을 겨냥한 법안이다. 이스라엘은 BDS운동을 자국을 파괴하려는 반유대주의 운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중동평화재단에 따르면 반 BDS법은 우파 및 기독교 친이스라엘 단체들의 주도하에 2015년 일리노이주를 시작으로 플로리다 뉴욕 뉴저지 캘리포니아 등 33개 주에서 통과됐다.
반 BDS법은 주정부가 이스라엘에 대해 보이콧에 나선 기업과 사업 관계를 중단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주마다 세부 조항에서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주가 해당 기업과 체결한 모든 계약을 파기하고 각 주가 투자한 연기금을 회수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실제로 2018년 11월 에어비앤비는 요르단강 서안 지역에서 상업적 활동을 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에 따라 이 지역에 등록한 숙소 200여곳을 명단에서 삭제한다고 발표했다가 5개월 만에 해당 방침을 철회했다. 브루스 라우너 전 일리노이 주지사의 수석 고문으로 최초의 반 BDS법 초안을 작성한 리처드 골드버그는 타임스오브이스라엘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에어비앤비의 보이콧 철회 결정은 친이스라엘 단체의 역차별 소송 외에도 일리노이 플로리다 뉴저지 등 주에서 연기금을 회수할 계획을 통지한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벤 앤 제리스도 반 BDS법에 따른 제재를 받을 경우 타격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통신 데이터에 따르면 벤 앤 제리스의 모회사인 유니레버에 연기금을 투자하고 있는 주는 플로리다 텍사스 뉴저지 애리조나 일리노이 미시시피주다. 이들 주는 모두 기업으로부터 연기금 투자를 철회하는 조항이 포함된 반 BDS법을 통과시켰다.
벤 앤 제리스는 이스라엘 점령지를 제외한 곳에서는 제품을 판매하기 때문에 반 BDS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스라엘이라는 국가 자체에 대한 보이콧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조지메이슨대 안토닌 스칼리아 로스쿨의 유진 콘토로비치 중동국제법센터 소장은 예루살렘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팔레스타인 영토 점령’이라는 용어에는 이스라엘이 주권 영토로 여기는 동예루살렘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며 “정착촌 보이콧이 사실상 이스라엘 전체에 대한 보이콧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미국 정부는 그동안 이스라엘에 우호적 행보를 보여왔지만 이번 논란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벤 앤 제리스의 결정에 대해 “민간기업의 활동”이라며 직접적 논평을 거부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