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부터 수주랠리를 이어온 조선업계에 후판가의 급격한 상승이 먹구름을 드리웠다. 다만 업계 안팎에서는 각 조선사들이 2년치 이상의 수주 잔고를 확보한 만큼 선가를 올려 후판가 인상에 따른 타격을 상쇄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1일 조선 빅3(한국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중 가장 먼저 2분기 실적을 발표한 한국조선해양은 영업손실이 8973억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적자 전환했다고 공시했다. 매출은 3조7973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3.3% 감소했다. 한국조선해양이 6개월여 만에 올해 수주 목표를 초과 달성한 것을 고려하면 손실 규모가 시장 예상보다 컸다.
한국조선해양은 “급격한 강재가 인상 전망으로 인해 조선부문에서 8960억원의 공사손실충당금을 선반영한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박 건조 비용의 20%가량을 차지하는 후판(선박에 쓰이는 두께 6㎜ 이상의 두꺼운 철판) 가격이 연초 대비 60% 오른 상황에서 하반기엔 더 큰 폭으로 오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는 후판의 원자재인 철광석 가격이 크게 오른 탓이다. 포스코는 하반기 후판 공급가를 지난해 동기 대비 2배에 가까운 t당 115만원을 제시하고 조선사들과 협상 중이다.
조선사들은 후판 가격 인상으로 예정원가 변화가 예상되면 수주 잔고를 점검한 후 예상 손실에 대해 공사손실충당금을 설정하는데, 이를 보수적으로 반영해 일시적으로 적자 규모가 커졌다는 설명이다. 한국조선해양 관계자는 이날 컨퍼런스콜에서 올 하반기부터 내년 상반기까지는 후판가가 t당 100만원을 넘을 것이라 가정하고 공사손실충당금을 설정했다고 밝혔다.
조선업체들이 주로 헤비테일(선수금을 적게 받고 인도 대금을 많이 받는 형태) 방식으로 계약을 맺는 것도 실적 쇼크에 영향을 미쳤다. 이번 실적엔 수주 가뭄을 겪었던 2019~2020년 수주 실적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비슷한 상황이 예상되는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도 다음 달 실적 발표에서 대규모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번 충격이 오래 가진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향후 후판가격이 안정될 가능성이 높고, 수주 잔고 증가와 국제해사기구 및 EU(유럽연합)에서의 환경규제 강화로 친환경 선박에 대한 수요가 계속될 것인 만큼 공급자 우위의 시장이 조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국내 조선업체의 수주 잔고가 28개월 만에 전년 대비 플러스로 전환했고, 이달에는 7.4%를 기록하며 2014년 12월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또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16일 기준 신조선가 지수가 141.16을 기록하며 2014년 호황기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한국조선해양 관계자는 “대부분 선주들이 강재가 급등을 인정하고 이게 선가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당분간은 선주사와 조선소 간 선가 줄다리기가 있을 것”이라며 “추가 수주는 수익성을 중심으로 선별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가격과 환율에 변동이 없다면 3분기부턴 흑자 전환도 가능할 것이라 봤다.
이밖에도 해운운임과 유가 상승에 힘입어 선박, 해양플랜트 발주가 꾸준히 이어지고, 전 세계적인 환경규제 강화로 조선 시장이 친환경 기술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것도 국내 조선업계엔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봉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단기적으론 수익성 저하가 불가피해보이지만 충분한 일감을 확보한 만큼 선가가 크게 오를 여지가 많다”며 “후판가격 급등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어보인다”고 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