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죄인이 아니다!” 자영업자들은 왜 거리로 나왔나

입력 2021-07-21 17:24 수정 2021-07-21 19:05

자영업자들이 거리로 나왔다. 국회 앞에서, 서울 종로와 마포 일대에서 ‘집합금지’ 명령을 거슬러 지난 14~15일 차량 시위를 벌였다. 각자의 가게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대신 “희망고문 그만하고 상생방역 실시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국회 앞에서는 매일 1인 시위가 열리고 있다.

묵묵히 버텨왔던 자영업자들이 거리로 나선 까닭은 뭘까. 국민일보는 20~21일 시위에 참가한 자영업자들, 소상공인 단체들, 시위에는 동참하지 않았지만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영업자 10명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돈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라고 했다. 이들은 ‘소통의 문제’를 언급했다. 1년 6개월 동안 영업시간 제한, 인원수 제한, 영업 금지 등의 조치를 겪어왔지만 단 한 번도 현장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고 느끼고 있었다. 자영업자 거리 시위를 이끈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의 고장수 공동대표 얘기는 이렇다.

“우리 목소리를 들어 달라는 거예요. 우리가 왜 힘든지, 어떤 걸 원하는지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았어요. 거리두기 개편안을 새로 만들 때 소상공인연합회, 한국외식업중앙회 같은 법정 단체가 참여하긴 했죠. 그래도 정작 매장을 운영하는 사장님들은 빠져 있으니 현장 고충이 제대로 반영됐겠습니까.”

서울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모씨는 “영업제한 조치는 생계에 지장이 생기는 일인데 무조건 따르라고 할 일이 아니다”라며 “당사자 의견을 묻는 게 먼저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은 규제가 없는 곳에서 모이는데 지금 같은 방식으로 얼마나 방역 효과를 거두겠나”고도 했다.


거리두기 단계가 올라갈 때마다 자영업자들은 ‘죄인 된 심정’을 느낀다고도 했다. 1년 6개월 동안 규제의 핵심에 놓이다 보니 자영업자가 코로나19 확산의 주역이 된 것처럼 여겨지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잘못한 것 없이 벌부터 받는’ 상황을 더 이상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것이다.

서울 강동구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권모(37)씨는 지난 3월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그는 “너무 시달렸다”고 말했다. 동네에서 작은 선술집을 하던 권씨는 지난해 영업시간 제한 조치로 사실상 장사를 할 수 없게 되자 점심 장사를 시작했다. 주력 메뉴를 식사 위주로 바꿨다. 저녁 장사는 아예 접었다. 안 하던 배달을 하기 시작했다. 운영 방식이 요동쳤다. 방역 조치가 바뀔 때마다 운영 계획을 바꿔야 하는 게 부담이 됐다.

“뭐 하나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는 걸 계속 경험하다 보니 그게 엄청난 스트레스였나 보더라고요. 운 나쁘게 내 가게에서 확진자라도 나오면 어떡하나 하는 고민도 많았고요. 5명 이상 받을 수 없는데 무조건 밀고 들어오는 손님들도 있거든요. 그런 분들한테 시달리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현장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은 일방적인 행정 조치는 운신의 폭을 좁힌다.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게 제한적이다 보니 ‘버티는 것’ 이상으로 새로운 도전을 하지 못 하게 한다.

인스타그램에서 ‘#자영업자는 죄인이 아니다’라는 해시태그 운동에 동참한 최영훈(48·가명)씨는 “정부가 장사를 하라 마라 계속해서 간섭하는데, 방역당국의 지침에 대해 예측가능성이 없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자영업자들의 요구는 간단하다. ‘더 이상 영업제한을 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고장수 공동대표는 “재난지원금을 많이 달라는 게 아니다”라며 “24시간 자유롭게, 자영업자가 스스로 선택해서 언제든 영업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는 게 핵심”이라고 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단 하루도 예전과 같은 ‘정상영업’을 하지 못 했던 이들은 ‘위드 코로나(With Corona)’로 방역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철저하게 방역을 지켜왔던 만큼 자율방역으로 전환해도 상황이 악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경기도 용인시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이민규(46·가명)씨는 “자영업자를 쥐어짜서 방역을 하는 것도 한계가 온 것 같다. 방역 지침을 안 지키는 사람을 잡아야지 아예 문을 닫게 하는 건 자영업자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업자들이 한계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는 지적도 많았다. 이철 한국외식업중앙회 국장은 “거리두기 4단계로 밤 장사 하시는 분들은 매출 90% 이상이 날아가게 됐다”며 “굉장히 안 좋은 상황”이라고 했다.

“그동안 자영업자들이 단체행동도 하지 않고, 망해도 개인이 망하는 거니까 만만한 자영업자들만 규제하는 것 아니냐. 이제는 못 참겠다.” (서울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하모씨)

“재난지원금보다 더 적은 돈이어도 내가 벌고 싶다. 한 푼이라도 받을 수 있는 건 고마운 일이지만, 누군가에게 받는 것보다 내가 버는 게 더 기쁜 일이다. 장사 할 수 있게 해달라.” (서울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권모씨)

“장소가 위험하다기보다 이용자가 방역을 하려는 노력이 곁들여져야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다. 시설만 막는다고 방역이 되지 않는다.” (고장수 전국자영업자비대위 공동대표·전국카페사장연합회 대표)

“자영업자가 언제까지 희생해야 하나. 우리가 희생해도 완전히 방역할 수 없다면 더 이상 자영업자만 희생하도록 강요해선 안 된다.” (경기도 용인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이모씨)

“자영업자들에게 지워진 의무가 너무 크다.” (인스타그램에 ‘#자영업자는 죄인이 아니다’에 동참한 최모씨)

“상대적 박탈감이 너무 크다. 여행지에 사람들로 북적이는 사진을 보면서 오후 6시에 가게 문을 닫을 때 억장이 무너진다.” (서울 송파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강모씨)

“가게 4곳을 운영하던 때가 있었다. 다 접고 하나 남았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PC방을 운영하는 박모씨)

“어쩔 수 없이 배달을 시작했는데 잘 안 된다. 처음부터 배달하던 곳이나 되지. 재료비라도 나올까 싶어서 계속 하고는 있는데 굉장히 힘들다.” (인천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모씨)

“자영업자들이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다. 공존과 상생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경기도 수원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양모씨)

“방역 조치가 어떻게 정해지는 건지 모르겠다. 현장 상황이 너무 반영이 안 된다.” (서울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모씨)


문수정 정신영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