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 WHO 총장도 털렸나…“‘페가수스’에 정상급 전화번호 14명 포함”

입력 2021-07-21 16:31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6월 24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회담장에 도착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스라엘 보안기업 NSO그룹이 만들어 수출한 스파이웨어 ‘페가수스’ 프로그램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포함해 14명의 전현직 국가정상급 인사의 휴대전화 번호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20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 가디언 등은 페가수스와 연결된 전화번호 목록에 현직 대통령 3명, 총리 10명, 국왕 1명 등 국가정상급 인사 14명을 포함해 전 세계 34개국 600명이 넘는 정치인과 각국 정부의 관료 명단이 들어가 있다고 보도했다.

앞서 WP는 전 세계 다른 언론사 16곳과 공동 취재를 통해 페가수스와 연결된 전화번호 5만개 이상이 담긴 목록을 입수한 후 이 프로그램이 언론인, 인권운동가, 기업인 등 해킹에 사용됐다고 폭로했다.

페가수스는 NSO그룹이 테러범과 중범죄자를 추적하기 위해 10년전 쯤 개발한 프로그램으로 40개국 60여곳의 정보기관이나 법집행 기관에 수출됐다. 페가수스는 스마트폰에서 파일, 사진, 통화기록, 위치기록 및 기타 개인 정보를 수집하도록 설계됐고 특정 시점에 실시간 감시를 위해 카메라와 마이크를 작동시킬 수 있다.

목록에 오른 대통령 3명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바르함 살리 이라크 대통령,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다. 현직 총리로는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 모스타파 마드불리 이집트 총리, 사드에딘 엘 오트마니 모로코 총리 등 3명이 포함됐다. 또 전직 총리 7명의 전화번호도 목록에 올랐는데, 이중 레바논과 우간다, 벨기에의 경우 총리가 현직에 있을 때 명단에 올랐다고 WP는 전했다.

모로코의 국왕 모하메드 6세의 번호도 있었고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의 번호도 목록에 올랐다.

이중 마크롱 대통령은 모로코, 바르함 살리 대통령은 아랍에미리트와 사우디아라비아, 임란 칸 총리는 인도에서 의뢰한 그룹에 전화번호가 올라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WP는 전했다.

다만 목록에 전화번호가 기재됐더라도 해킹의 직접적인 공격 대상이 됐는는 확인하기는 어렵다. WP는 “목록에 오른 이들 중 누구도 공동취재단에 스마트폰을 제공하지 않았고 페가수스에 의한 감염을 밝혀낼 만한 포렌식 검사 역시 진행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NSO그룹은 폭로된 전화번호 목록이 감시 대상 리스트라는 주장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NSO그룹 소속 톰 클레어 변호사는 “이 자료는 감시나 NSO그룹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합법적이고 완전히 적절한 용도로 사용된다”고 말했다. 또한 사측은 통상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정부 관료를 포함해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것을 특히 금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마크롱 대통령과 모하메드 6세 국왕,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 등 최소 3명은 NSO그룹 고객들의 표적 또는 공격 대상으로 선정된 적이 없다는 걸 확인했다고 전했다.

프랑스 검찰은 해킹 의혹과 관련해 수사에 나섰다. 검찰은 이날 성명을 내고 페가수스가 프랑스 기자들을 사찰했다는 의혹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프랑스 탐사보도 매체 메디아파르가 소속 기자들이 모로코 정부의 감시를 받았다며 고소한 데 따른 조치로 알려졌다.

정우진 기자 uz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