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도 못 맞고 혜택도 못 받고…백신 이벤트에 커지는 박탈감

입력 2021-07-21 08:02
마포구 백신예방접종센터 백신 접종 인증 포토존(왼쪽),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화이자 백신을 접종하고 있는 모습. 마포구 제공·연합

서울 서초구 직장에 근무하는 20대 진모씨는 요즘 매일 잔여 백신 창을 들여다본다. 백신을 맞고 싶지만 잔여 백신 신청은 ‘하늘의 별 따기’다. 접종에 성공한 또래 친구는 아주 소수지만 이들이 “수험표 들고 다니듯 백신 접종 확인서를 활용해야겠다”고 말할 때마다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잔여 백신 접종에 성공하려면 반나절은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회사 선배들은 연차나 반차를 내고 클릭에 몰두하지만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진씨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코로나19 확산세가 거세지면서 백신 접종 수요는 늘고 있지만 물량 부족으로 잔여 백신 접종의 문은 더욱 좁아졌다. 잔여 백신 접종이 힘들어지자 인터넷에는 ‘잔여 백신 성공기’ 같은 게시글이 쏟아지고 있다. ‘새로고침 대신 목록 버튼을 열었다 닫았다 해야 한다’ ‘오전 10~11시와 오후 3~4시를 피하라’ ‘30분 내로 갈 수 있는 곳을 선택해 집중하라’는 식이다.

서울 성동구에 거주하는 30대 여성 정모씨도 요즘 ‘맘카페’에서 잔여 백신 접종 성공 노하우를 얻느라 분주하다. 정씨는 육아 휴직 후 회사 복직을 앞두고 있다. 남편은 민방위 대상자여서 얼마 전 얀센 백신을 맞았다. 아직 접종 대상이 아닌 정씨 입장에선 잔여 백신 신청에 성공하는 것 외엔 답이 없었다. 정씨는 21일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혹시 아이에게 코로나 바이러스를 전파할까봐 불안한 마음에 접종 신청을 매일 시도하고 있는데 실패했다”며 “마치 ‘백신을 맞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구분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전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백신 접종을 장려하고 가라앉은 사회 분위기를 반전시키고자 유통계와 지방자치단체가 합세해 백신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백신을 맞고 싶어도 맞을 수 없는 이들에게선 “이중 차별”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백신 접종도 못하고, 이벤트 혜택도 누리지 못한다는 심리적 박탈감이 작용한 것이다.

특히 활동량은 많지만 백신 접종에는 제외된 20대 불만이 커지고 있다. 민간 기업에 이어 지자체까지 백신 이벤트에 두 팔 걷고 나서자 이들의 박탈감은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백신 접종 인증을 하면 커피 쿠폰 등을 증정하는 식이다.

최근 서울 양천구청 블로그에는 양천구시설관리공단이 진행하는 ‘백신 인증 이벤트’ 글이 올라왔다. 서울 양천구 목동에 사는 취업준비생 박모(24)씨는 “같은 지역에 사는 누군가는 백신 접종 인증샷을 남겨 상품권까지 받을 것이라 생각하니 딴 세상 이야기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 역시 지난 19일부터 SNS를 통해 백신 접종 인증을 하면 커피 쿠폰을 증정하는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진씨 역시 “백신을 맞지 못하는 것도 불안한데 활동량이 많은 20대가 감염 확산 주범 취급을 받는 것이 억울하다”며 “게다가 지자체까지 나서서 백신 인증 이벤트를 하니 허탈한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박민지 전성필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