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 가족끼리 마스크 벗고 대화 나눌 수 있게 하는 게 정부의 목표입니다.” 코로나19 방역의 최고 책임자인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7일 특별방역점검회의에서 한 발언이다. 당시 점차 높아지던 백신 접종률이 ‘추석 노마스크’ 목표의 배경이었다. 문 대통령은 “K-방역의 성공에 이어 백신 접종의 성공까지 이뤄내 국민의 자부심이 되고 세계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의 목표는 불과 한 달 만에 달성이 어려워졌다. 지난 7일 일일 신규 확진자 수는 1212명을 기록했다. 400~600명 전후를 오가던 일일 확진자 수가 1200명대를 넘은 건 지난해 12월 25일(1240명) 이후 처음이었다. 4차 대유행의 시작이었다. 7월부터 ‘일상과 방역의 조화’라는 방침 아래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와 백신 접종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본격화하려던 정부 구상에 차질이 빚어진 것이다.
전 세계로 퍼진 델타형(인도) 변이 바이러스가 국내에 확산된 게 주요 원인이었다. “코로나로부터 빼앗긴 일상을 국민들께서 조금씩 회복하는 기쁨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던 K-방역 청사진이 무색해진 셈이다. 정부가 마스크 필요 없는 추석을 목표로 하던 때 델타형 변이는 이미 해외 각국에서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정부는 이런 확산세를 안일하게 판단한 데다 때 이른 방역 완화 신호를 보내 위기를 자초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델타형 변이 확산에 따른 외국의 심각했던 상황과 대응 방식을 보면 이러한 방역 실책은 더욱 두드러진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21일 “외국은 백신 접종자의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며 방역을 다시 강화한 반면, 우리나라는 백신 접종자에 대한 야외 노마스크 방안을 발표하는 등 방역 완화 기대감에 경각심이 무너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해외 델타’ 창궐인데 빗장 푼 K-방역
델타형 변이 확산의 반면교사는 영국이었다. 영국은 세계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가장 먼저 시작했고, 지난달 7일 기준 전체 인구 대비 1회 이상 접종자 비율은 60.9%, 접종 완료자 비율은 42.4%였다. 영국에선 비교적 높은 백신 접종률에 힘입어 확진자 수가 대폭 줄어들었다. 그러자 영국은 마스크 착용 권고를 해제하는 등 봉쇄 조치를 풀었다. 델타형 변이는 이같이 방심한 틈을 파고들었다. 지난 5월 19일 3424명이었던 영국의 델타형 변이 확진자는 지난 16일 25만3049명으로 두 달 새 70배 넘게 급증했다.세계 각국은 신속하게 대응했다. 델타형 변이 감염자 수가 영국 다음으로 높은 미국은 방역 규제 완화 방침을 거두고 지난달 말부터 백신 접종과 무관하게 실내 마스크 착용을 권고했다. ‘백신 모범국’인 이스라엘은 델타형 변이가 확산하던 지난달 25일 실내 마스크 착용을 다시 의무화했다. 호주도 지난달 26일 생필품 구매와 생업 등 필수 목적 외에는 외출을 금지하는 봉쇄 조치를 연장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이런 대응과는 반대로 점차 방역 긴장감을 완화하는 조치를 내놨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지난달 9일 “백신접종 완료자에 한해 이르면 7월부터 단체여행을 허용하겠다”며 ‘백신 인센티브’ 방안을 언급했다. 정부는 1차 접종만 한 사람들이 공원·등산로 등 야외에서 마스크를 벗을 수 있고, 접종을 완료하면 인원 제한에서 예외가 되는 등의 혜택도 7월부터 시행할 예정이었다.
정부는 또 같은 달 16일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를 예고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1·2단계에서는 기존 4명으로 제한돼 있던 사적 모임 인원을 8명까지 늘려주겠다는 방안이 골자였다. 김 총리는 “대한민국은 더욱 안전해지고 있다”며 “일상 회복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난달 20일 발표된 사회적 거리두기 개편안에 정부의 안이했던 판단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고 지적했다. 김 총리는 “그간 의료 대응 여력이 확충됐고 예방접종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코로나19의 위험도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또 “코로나19 장기화로 국민적 피로감이 높아지고 있다는 걸 잘 안다”며 “방역과 일상의 균형을 찾아 지속가능한 방역을 실현하겠다”고 강조했다.
당시 방역 당국이 델타형 변이의 위험성을 모르지는 않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5월 11일 전염성이 높다는 이유로 델타형 변이를 ‘우려 변이’로 지정했는데,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는 그 이전인 5월 2일 “인도발 변이바이러스가 최소 17개국에서 발견되고 있어 국내 유입 차단 문제가 매우 절실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같은 달 18일부터는 공식 통계에 변이 확산 상황을 포함시켰다. 방대본은 지난달 3일 “특히 영국에서 델타형 인도 변이 확산이 증가하는 상황이며, 호주와 일본에서도 지역사회에 전파되고 있어 국내에서도 주의가 요구된다”고 했다.
정부는 계획대로 백신 접종률을 높이면 델타형 변이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상원 방대본 역학조사분석단장은 지난달 15일 브리핑에서 “델타형 변이는 영국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백신 2회 접종을 완료하면 방어 효과가 60~88%로 높다. 입원을 할 정도의 중증 상태를 방지할 효과는 92~96%”라고 말했다. 그는 “변이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격리에 중심을 두는 게 아니라 2회 예방 접종을 정해진 일정에 따라 철저히 받는 것”이라고 했다.
‘방역 해이’ 우려 뭉갠 방역 당국
델타형 변이 확산의 변곡점은 6월 20~26일이었다. 7월부터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하겠다는 개편안이 발표된 때와 겹친다. 이때만 해도 델타형 변이의 국내 감염자 수는 21명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다음 주인 6월 27일~7월 3일에는 2배 넘는 52명이 델타형 변이에 감염됐다. 델타형 변이 감염자 수는 7월 4~10일 250명, 11~17일 719명으로 폭증했다. 3주 만에 약 34배 증가한 것이다.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지난달 16일 브리핑에서 새로운 거리두기 개편안 발표를 예고했다. 당시 ‘백신 인센티브가 방역 해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언론의 우려가 제기됐다. 하지만 중대본 관계자는 “과거에 비해 단순 환자 수에 얽매이지 않고 위중증 환자 수, 치명률 감소 등을 고려해서 거리두기 단계 개편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틀 뒤 방대본도 “우리나라는 백신 효과가 적기에 그리고 상대적으로 크게 더 빠르게 나타날 것으로 추정한다”는 기대 섞인 전망을 내놨다. 방대본 관계자는 “접종이 많이 진행됐음에도 코로나19가 여전히 유행하거나 도리어 증가하는 나라가 있는데, 거리두기를 접종 속도에 비해 이르게 이완한 경우”라면서도 한국에는 해당하지 않는 얘기라고 말했다.
델타형 변이가 전 세계 우세종이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오던 6월 말에도 정부는 방역과 일상 회복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주력했다. 거리두기 장기화에 따른 자영업자·소상공인의 경제적 손실에 대한 우려가 컸기 때문이었다. 중대본 관계자는 지난달 24일 “현재 국내 유행 통제 상태는 상당히 안정적이고, 델타형 변이 점유율은 우려할 수준이 아니다”면서 “사회적 거리두기 재편을 연기하면서 서민과 자영업자, 소상공인 피해가 누적되는 상황을 계속할 필요성은 떨어진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지난달 27일 “아직 거리두기 개편이 이르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유행하고 있기 때문”이라면서도 새로운 거리두기 완화 방침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6월 말 수도권을 중심으로 델타형 변이가 눈에 띄는 증가세를 보이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완화된 거리두기 개편을 하루 앞둔 지난달 30일 서울과 인천, 경기도는 거리두기 완화 시행을 일주일 유예한다고 밝혔고, 정부는 이날 오후 뒤늦게 수도권 지자체들의 결정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2일부터는 방역 당국에서도 감염 확산세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김 총리는 “코로나19 방역이 다시 한번 큰 고비를 맞았다. 전파력 강한 델타 변이 감염의 90%가 수도권에서 나오고 있다”고 했고,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현시점에서 (델타형 변이) 유행을 차단하지 않으면 대규모 유행이 될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완화된 거리두기 시행을 재검토하겠다거나 백신 인센티브를 철회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는 이때도 나오지 않았다. 지난 4일이 돼서야 ‘수도권에서는 예방접종자라도 실외에서 마스크를 벗지 못하도록 한다’는 방안이 발표됐다.
대통령의 발언도 달라졌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방역 없이는 경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국내 델타형 변이의 검출률이 2~3% 수준에서 9.9%까지 치솟은 직후였다. 7일 일일 확진자 수는 1212명으로 폭증했고, 다음 날 김 총리는 국회 시정연설에서 “절체절명의 고비를 맞았다”며 “국민 여러분이 또다시 어려운 사정을 맞게 해 드린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정 청장도 지난 8일 “4차 유행 진입단계로 판단하고 있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는 특히 “1차 예방접종이 30% 가량 진행돼 고령층의 치명률, 위중증은 줄일 수 있지만 사회 전체를 감염으로부터 방어할 수준은 아니다”고 말했다. 또 “오랜 코로나 대응으로 모두 지친 상황에서 거리두기 완화 신호가 사람들의 접촉을 증가시켰고, 전파 속도가 빠른 델타 변이의 증가가 지금의 유행 급증에 영향을 줬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델타형 변이 확산세와 백신 접종률 등을 감안할 때 방역의 고삐를 늦출 단계는 아니었다는 취지다.
중대본은 12일부터 2주간 수도권에 새 거리두기의 최종단계인 4단계를 적용한다는 방침을 지난 9일 발표했다. 오후 6시 이후 3인 이상 모임을 금지하는 게 골자였다. 지난달 말까지만 해도 델타형 변이는 당장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고 했던 방역 당국의 입장이 열흘 만에 뒤집힌 것이다. 그 사이 델타형 변이 검출률(국내 발생)은 7월 11~17일 기준 33.9%까지 올랐다.
문 대통령은 지난 14일 SNS를 통해 “델타 변이의 확산이 무섭다”며 “‘짧고 굵은’ 4단계를 위해서는 모두의 노력과 협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방역 강화조치에 협조하는 국민들께 감사하면서도 송구한 마음”이라고 했다. 이날 김 총리는 국회에서 “7월부터 1차 (백신) 접종이 진행되면 국민에게 마스크를 벗는다든가 (거리두기 완화) 단계를 돌려드린다고 약속한 게 있다. 골목 경제나 서민경제도 생각했던 것”이라며 “그게 결국은 잘못된 경각심에 대한 완화 신호가 돼서 그동안 잠재된 무증상 감염자도 한꺼번에 나왔다”고 정부의 판단이 잘못됐음을 인정했다.
전문가들은 델타형 변이 확산을 안이하게 판단했던 정부의 방역 완화 메시지와 느슨한 대응이 방역 실패로 이어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최재욱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정부는 델타형 변이의 국내 유입을 차단하지 못했고 델타 변이가 지역사회에 이미 들어와 퍼지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델타 변이가 어떻게 퍼졌는지 명확하게 밝히지도 못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교수는 “전문가들은 방역 완화 신호를 주면 20~50대에서 확진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6월 초부터 예측했고, 그런 자료를 정부에 전달했다”며 “방역 완화에 대한 심리적 기대감을 조성한 게 4차 대유행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했다.
구자창 박세원 기자 critic@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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