갭 투자, 외지인 매수 증가로 이어져
정부의 전방위적 부동산 세제 강화 등으로 한동안 잠잠한 듯했던 부동산 투자 수요가 올해 들어 또다시 불붙고 있다.
지난해까지 정부가 고강도 대출규제와 함께 다주택자의 주택 취득, 보유, 양도 전 과정에 과세를 강화하면서 투자 수요는 뚝 떨어졌다는 관측이 많았지만, 정작 올해 들어 서울 등 수도권에 외지인 거래와 ‘갭 투자(매매가와 전세가 차이가 적은 주택을 매수하는 것)’가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정부·여당의 임대차법 개정 등 시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밀어붙인 정책의 후폭풍으로 전셋값과 지방 집값이 급등한 것이 오히려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는 요인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9일 확대간부회의에서 부동산 시장 상황과 관련해 “최근의 가격 오름세는 주택 실물의 수급 요인, 기대이익을 향한 여전한 투기 수요, 막연한 불안·기대심리, 부동산정책 변화 기대감 등이 복합 작용한 결과”라고 말했다. 최근 입주 물량 감소 등에 따른 수급 요인으로 가격이 올랐다는 점을 인정하는 동시에, 여전히 가격 상승 이면에 투기 수요가 있다는 얘기다. 홍 부총리는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근거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 공개된 외지인 거래나 보증금 승계 거래 등의 통계를 보면 투기로 의심할 만한 거래 정황들이 일부 보인다.
부동산정보업체 직방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서울의 아파트·오피스텔·다세대 빌라 등 집합건물 매수자 가운데 서울 거주자 비율은 74.7%로 현 정부 출범 시기인 2017년 상반기 79.5%보다 다소 감소했다. 반면 서울 집합건물을 매수한 경기도·인천 등 수도권 거주자나 그 외 지방 거주자 비율은 각각 15.9%와 9.4%로, 2017년 상반기 13.7%(수도권), 6.8%(지방)보다 소폭 증가했다. 외지인 거래가 늘어난 것이다.
실거주와 무관해 보이는 갭 투자도 급증했다. 국회 국토교통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상혁 의원이 국토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5월 서울과 수도권에서 10대 매수자가 세를 끼고 집을 매수한 거래는 총 203건으로 8건에 불과했던 1년 전보다 25배나 늘었다. 소득이 거의 없는 10대 특성상 대부분 부모로부터 돈을 증여받거나, 부모가 자녀 명의로 산 것으로 추정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21일 “갭 투자 증가는 정부가 주장하는 ‘집값 고점론(論)’ ‘금리 인상 위기론’ 등이 시장에 전혀 먹히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꼬집었다. 일반적으로 증여세는 다른 세금과 비교해 세율이 높지만, 정부가 다주택자에 대한 세 부담을 전방위적으로 강화하면서 차라리 증여세를 물더라도 자녀 명의로 집을 사두는 편이 낫다는 인식이 확산한 것도 10대 갭 투자 증가의 배경으로 꼽힌다.
정부는 그동안 매수와 동시에 실거주가 이뤄지지 않는 갭 투자와 외지인 거래를 부동산 투기로 규정해왔다. 홍 부총리도 “조만간 국민과 시장 참여자들께 통계에 입각한 팩트, 정확한 부동산시장 판단, 향후 정부의 정책 의지 등을 명료하게 전달하는 계기를 준비할 것”이라며 추가 대응에 나설 것을 시사했다.
그러나 부동산 전문가들은 정부가 섣불리 투기 수요를 잡겠다고 나서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이 연구원은 “서울 집합건물의 외지인 거래 증가는 경기도에 살면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갭 투자를 통해서라도 내 집 마련을 했기 때문일 수도 있어 무조건 투기로 단정할 일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오히려 이런 현상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가 빚어낸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임대차법 개정 이후 본격화한 전셋값 급등 여파로 매매가와 전셋값의 격차가 줄면서 갭 투자 수요가 늘었을 수 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개정 임대차법이 시행된 지난해 7월 대비 지난달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16.69% 상승했다. 경기도와 인천까지 포함한 수도권 아파트 전셋값도 15.38% 올랐다. 서울 아파트의 매매가 대비 전셋값의 비율은 임대차법 시행 직후인 지난해 8월 53.3%에서 다섯 달 뒤인 올 1월 56.3%까지 치솟았다.
임대차 시장 불안 등으로 인해 수도권과 지방의 집값이 전방위적으로 급등한 것도 서울 주택의 외지인 매수를 높인 배경이 될 수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경기도 고양(36.05%), 김포(32.99%) 등 수도권은 물론, 세종(43.82%), 충남 계룡(18.38%), 부산(17.45%), 경북 포항(15.31%) 등 지방에서도 집값이 두 자릿수 비율로 상승한 곳이 속출했다. 급등한 지방 아파트를 팔고 이를 바탕으로 서울 시내 ‘똘똘한 한 채’를 장만하려는 수요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최근 시장 불안은 얼마 안 되는 ‘투기꾼’ 때문이 아니라 정부의 정책 실패로 불안해진 다수의 무주택 실수요자들의 매수 영향이 크다. 이걸 섣불리 억누르려고 또 다른 규제를 꺼내 들면 더 심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