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도 없고, 감정만 있고…정치논리에 발목잡힌 한·일관계

입력 2021-07-20 17:28

한·일 양국이 체면 싸움만 하다가 결국 정상회담을 무산시키면서 외교가에선 양국 관계가 정치 논리에 발목이 잡힌 결과라는 평이 나온다. 서로에 대한 신뢰를 얕은 상황에서 양국 모두 선거를 앞둬 각각 반일, 반한 감정을 뛰어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회담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본은 과거사 문제에 대한 해법만 요구하면 고자세로 일관했다. 아사히신문은 20일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일본이 수출규제 문제에서 양보할 경우 불안정한 상태인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정상화하겠다는 한국 측의 제안이 있었다”면서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지소미아와 수출규제는) 전혀 별개의 문제”라며 응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우리 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 차원으로 시행했던 수출규제인 만큼 일본은 이 문제를 지소미아가 아닌 강제징용과 함께 풀어야 한다고 본 것으로 알려졌다. 강제징용 문제에서 얻은 것 없이 수출규제를 해제했다는 비판 여론이 9월 총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한일관계와 관련해 국내 언론 매체에 부적절한 발언을 해 파문을 일으킨 소마 히로히사 주한일본대사관 총괄공사. 연합뉴스

정상회담 무산의 결정타였던 소마 히로히사 주한일본대사관 총괄공사의 부적절한 발언에 대해서도 일본은 유감 표명만 한 채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경질 성격의 인사이동 조치가 이뤄질 것이란 일본 언론의 보도만 있었지 외교 경로를 통해 우리 정부에 정식으로 통보된 내용은 없다고 한다.

한 전직 외교부 고위 관료는 “소마 공사를 곧바로 본국으로 소환하는 등의 조치가 있어야 했다”며 “일본의 미온적 대응은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아도 아쉬울 것 없다는 태도로 보였다”고 평가했다. 이날 일본을 방문한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은 “(소마 공사) 발언의 본질은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였고, 그것이 그들(일본)의 속내를 드러낸 것이라면 큰 문제”라며 일본 측에 응당한 조치를 촉구할 것을 예고했다.

일본의 고압적 태도와 별개로 우리 정부가 키운 반일 감정 또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수출규제 해제를 요구하면서도 수출규제 덕분에 소재·부품·장비산업의 국산화를 이뤘다 하고, 일본을 ‘패싱’하며 추진하던 대북정책에 도쿄올림픽을 활용하려는 모습이 일본으로선 달갑지 않다는 설명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아셈볼룸에서 열린 대한민국 소재·부품·장비산업 성과 간담회에서 구자열 한국무역협회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당초 우리 정부의 구상은 도쿄올림픽을 통해 북·미 정상회담을 재개하려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김진표 한·일의원연맹 회장이 잇달아 일본에 가는 등 너무 속보이는 외교를 했다”고 비판했다.

꼬일대로 꼬인 한·일 관계를 정상회담 한 번으로 모두 풀어보려 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다. 라종일 전 주일대사는 “청와대를 위주로 정상회담을 통해 정치적으로 너무 쉽게 (문제를) 풀려 한 게 잘못”이라며 “시간이 걸리고 어렵더라도 외교부가 실무를 맡아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안을 마련해 정상회담으로 가는 순리를 따라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