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해부대 문무대왕함 내 집단감염 사태 수일 전부터 기침·고열 등 코로나19 의심증상 보고가 속출했지만 군 간부가 이를 묵살했다는 증언이 20일 나왔다. 바이러스에 감염돼 열이 나는 장병들에게 해열·진통제 타이레놀 2알씩을 주며 버티라고 했다는 주장이다. 감염병에 대한 군의 무지와 사태 초기 안일했던 대처가 재확인된 셈이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문무대왕함에서 임무를 수행 중이던 한 장병의 아버지는 “배 안에서 7월 2일부터 독감 환자가 발생했다”며 “병사들이 맛이나 후각을 못 느껴 코로나19일 확률이 높다고 보고했으나 묵살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체온이 39~40도까지 오르는데 간부들은 타이레놀 2알씩 주면서 버티라고 했다”고 했다. 그는 야당 감시가 없으면 군이 아들을 제대로 보살피지 않을 것이 두려워 하 의원실에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앞서 합동참모본부는 청해부대에서 지난 10일 초기 유증상자가 발생해 간이검사를 실시했고, 음성 판정이 나와 감기약을 처방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장병 아버지의 증언이 사실일 경우 이보다 8일이나 앞서 선내 감염 징후가 포착됐다. 유증상자 격리와 신속한 유전자증폭(PCR) 검사 등 선제 대응이 필수적인 상황에서 늑장 대처로 일관하는 사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장병 아버지는 또 “좁은 선실에서 집단생활을 하는 특성상 감염 위험이 컸는데 치료용 산소통도 확보를 안 했다”며 “기초적인 대비도 안 한 군을 보니 답답하다”고도 했다.
코로나19 확진 여부를 걸러내지 못한 진단 키트를 놓고도 군이 감염병 예방 조치에 소홀했던 정황이 드러난다. 국방부가 문무대왕함 출항 전인 지난해 12월 ‘신속항원검사’ 키트를 코로나19 진단에 활용하라는 지침을 합동참모본부와 해군 측에 전달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는 의혹이다.
당시 문무대왕함에 보유하고 있던 ‘신속항체검사’ 키트의 경우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반응만 확인할 수 있어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데는 정확도가 떨어진다. 실제로 사태 초기 유증사자 40여명에 대한 검사에서 음성 반응을 보여 군 당국이 방심하게 된 원인으로도 꼽힌다.
군은 여전히 청해부대 집단감염에 대해 변명만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방부는 이날 ‘유엔이나 주둔국과 협의해 현지에서 백신 접종을 위한 노력을 했느냐’는 질의에 “청해부대는 다국적군사령부에 소속돼 파병됐기 때문에 유엔에 백신 접종 요구 권리가 없었다”며 “청해부대가 주로 기항하는 국가는 외국군에 대한 백신 접종을 허가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국회 국방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청해부대 백신 미접종과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를 요구했다. 의원들은 “청해부대가 왜 나라 없는 부대처럼 방치가 됐는지 낱낱이 밝혀내겠다”고 강조했다.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